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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icity Apr 13. 2022

#22. 카이엔77을 찾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가 나우누리 시절을 떠올리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오는 채팅장면을 보다가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채팅 중독이었다.

대학 1학년 1학기 시절의 밤은 나우누리 채팅방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입학해 처음으로 노트북이란걸 가져보고,

내 주변의 얼리어답터 선배가 시키는대로

천리안도 하이텔도 아닌 "나우누리"라는 것을 가입하고,

밤이면 밤마다 01410에 접속해 채팅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고등학교시절 만화만 봤던 나는 그 당시 제일 좋아하는 작가 작품의 주인공 이름으로 나우누리 아이디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름이 이미 선점되어있어서 주인공 이름뒤에 2만 가져다 붙여 아이디를 만들었다. 어설픈 시절이었다.


나우누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연결되어 내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웃기게 진지하게 해볼 수 있다는 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무명씨이다보니 내 페르소나를 그때 그때 채팅방 상황에 따라 설정하고 연기하듯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처음에는 대학교 동기 선배들과 채팅하며 놀다가,

영화방, 타자방(아니 방에서 왜그렇게 타자 빨리치기 내기를 했을까 -_-;;),

수다방, 동기방 등 여러 방을 들락날락 거리다가,

동호회에 가서 사람들이 남긴 글도 읽다가,

그 당시 유행하는 커뮤니티 작가들의 글도 읽었다가,

대학 선배들 동기들과 채팅도 했다가,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보니

여기 저기 방을 돌아다니다 만난, 마음이 맞는 나우누리 속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카이엔77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친구와 아주 말이 잘 통했어서(라고 생각했다)

접속하면 무조건 이 친구가 있는지 검색해봤고, 있으면 말을 걸었고 한참을 얘기했었다.


그 당시 채팅을 사람들과 몇번 벙개를 했었는데 결국 이 친구랑만은 결국 벙개를 못했다.

몇번 벙개 얘기가 나왔던 것도 같은데, 결국 우린 만나지 못했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나의 첫 채팅 사랑은 벙개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만나지 못했으니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그 아이가 남주혁이겠거니..-_-...)


그러다 리얼 월드에 남자친구가 생겼고, 나우누리도 뜸해졌고, IMF가 터졌고, 해외로 연수를 다녀오니 인터넷 세상이 되어있었고 나우누리의 세계는 끝이 나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가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학교도 나이도 다 거짓이었을 수 있다.

내가 아는 그 친구는 그 친구가 만든 또 하나의 페르소나일수도 있고.

나도 나우누리에선 남자도 되었다가 회사원이었다가 방배동 살았다 압구정 살았다 평창동도 살았었으니까..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서,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에서 결국 주인공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 둘은 서로를 성장시켰지만, 결국 결혼하지 않았기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나는 이해했고 결말이 좋았다)


왜냐하면 나우누리에서 만났던 모든 인간들의 아이디는 기억에서 잊혀졌는데,

만나고 싶었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 그 친구 아이디는 내 기억속에 또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손가락과 글자와 무수한 대화창만 가득했던 메타버스 나우누리에서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던

카이엔77


이 글은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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