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척, 하다보면

by 노경문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운 날이 있다.
특별히 힘든 일도 없는데,
몸이 처지고 말수가 줄고,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

그럴 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있어도 돼.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이 말은 위로 같았지만,
어쩌면 감정에 끌려가는 나를 정당화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예전엔 그렇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진짜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억지로 웃는 건 가식이고,
기분이 안 좋은 날엔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한 번은 너무 지쳐서,
감정이 내 하루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를 속여보기로 했다.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려본다.
밖에 나가서
햇볕을 얼굴에 받아본다.
그냥…
행복한 사람처럼 움직여본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거리의 비둘기가 눈에 들어왔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행복해하는 아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은 게 아니라,
웃고 있으니 조금 괜찮아졌다.

그날 이후, 알게 됐다.
감정은 늘 진실하지 않다는 걸.
그리고 때때로,
‘척’이라는 작은 연기가
진짜 마음을 데려오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표정 피드백이라 부른다고 한다.
웃는 얼굴을 하면 뇌는 그걸 진짜로 받아들인다.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에
감정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이후로
‘기분 좋아서 웃는 사람’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웃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나는 불완전하다.
지치고, 무기력하고,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내가 먼저 나에게 방향을 보여주기로 한다.

행복한 척,
감사한 척,
괜찮은 척.

척들이 모여
내 하루를 조금 더 밝은 쪽으로 끌어당긴다.

우리는 감정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보여주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척이 진짜가 되었을 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날, 잘 속여서 다행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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