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 Oct 08. 2015

첫 번째 만화 <연애혁명>

네이버 웹툰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은 많이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작품은 <연애혁명>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쫌 논다 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이다.


<연애혁명>을 이야기하기 전에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책을 먼저 말해야 될 것 같다.


과거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와타야 리사 작가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일본의 권위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 상을 차지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심사평 때문이다.

당시 천재소녀라는 수식어로 일본 문단에 등장했는데 현재는 뭐하는지 모르겠다.

-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그리는 신인들이 두렵다.

이케자와 나츠키(소설가) -     


이 심사평은 <연애혁명>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연애혁명>은 10대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각종 패러디와 롤 드립, 그리고 10대 소녀들이 빠질 만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 작품이다.


때문에 그 시절 동경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쫌 노는 언니, 오빠들을 만화의 전면으로 내세워 10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10대가 아니더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느낌의 만화라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이 만화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다.


그것은 이 만화가 흔히 얘기하는 쫌 논다는 고등학생들의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일진 미화라는 비판 아닌 비판을 받고 있다.


생각해면 웹툰의 등장하는 인물들이 뉴스의 사건사고란 메인을 장식하는 일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전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70년대의 미워할 수 없는 표상인 얄개라고 불리기에는 만화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의 감각의  촌스러워진다.


작품의 일진 논란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보산업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정보산업고


작품의 주 이야기는 왕자림과 공주영의 연애담이다. 여기에 곁가지를 뻗어나가며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렇게 보면 여타의 순정만화의 줄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배경이 정보산업고라면 조금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 중학교 시절, 컴퓨터가 너무 좋은 나머지 근처의 정보산업고로 진학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말없이 따귀를 때렸다. 정보산업고란 그런 이미지의 학교였다. 중3 정원이 35명인 한 반에서 뒤의 석차를 다투는 몇몇의 아이들이 앞 다퉈 가는 상고, 공고…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의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있어서 정보산업고라는 것은 그런 이미지였다.


232 작가의 <연애혁명>에서 나오는 정보산업고 학생들의 이미지도 별 다를 바 없다. 공부보단 노는 것에 집중하고, 연애에 집중하고, 롤에 집중하는 모습들. 그리고 일탈의 도구로 몇 까치의 담배를 물고 있는 일부 학생들.


때문에 일부 독자들은 만화 속의 이러한 모습들이 일진이라는 존재 자체를 미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정보산업고’라는 이미지 때문에 더욱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작품이 기안대가 아닌 서울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들을 단지 작품 속 인물들이 정보산업고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위들을 일진으로 정의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이래서 공부 잘하고 볼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기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찝찝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연애혁명>을 보는 눈에 색안경이 벗겨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작품의 구조가 공주영과 왕자림 두 인물과 주변관계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너와 나


이미 졸업한 혹은 재학 중인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자. 서른 명 남짓한 고등학교 교실에는 별의별 놈들과 년들이 있다.


그 곳에는 왕따, 축구만 하는 애, 밥 잘 먹는 애, 오락 잘하는 애, 공부 잘하는 놈, 공부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새끼, 얼굴 잘생긴 분… 등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연애혁명>에서는 이런 인간 군상들 중 10대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대표 인물들만을 뽑아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던 독자들의 눈에는 나름의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고등학교 때 여자 한 번 사귀지 못한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허허...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은 이런 여자와 말도 못 해봤죠


솔직히 얘기하자. 우리는 <연애혁명>의 공주영처럼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신 있게  대시할 수도, 왕자림처럼 쿨하고 도도하게 차 버릴 수도 없는 고등학교 시절을 살아왔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몇 가지의 후회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것은 대리만족 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여기에 <연애혁명>이 10대를 넘어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학원물 보다는 판타지


<연애혁명>은 분명 잘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연애혁명>은 10대들의 영역에서 그치고 만다. 이유는 이 작품에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어른들은 등장한다. 하지만 등장하더라도 제대로 된(?) 어른의 이미지 보다는 그저 학생들의 구조에서 간섭하지 않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은 1화에서부터 보인다. 공주영의 등장은 첫 회부터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없게 된다.


보통의 대한민국 부모라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기숙사에 사는 것도 아니고 공주영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집안 사정일 뿐이다.


또 담임을 맡고 있는 조연사 선생 역시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 보다는 귀찮아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그게 설사 작품 속 허용된 개그라도 말이다) 그리고 여타의 어른들 역시도 조연사 선생과 비슷한 견지를 취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 있다. 학원물의 대표적인 드라마 중 하나인 학교 시리즈다. 이 드라마의 경우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놓고 학생과 부모, 혹은 선생들이 대립하는 면면을 보여준다.

학교1의 등장인물들 풋풋하다.

하지만 <연애혁명>의 경우 사건을 학생들간의 대립으로만 한정적으로 놓고 있어 아쉬움이 든다. (최근 232 작가가 휴재를 하고 있는데 작품 속의 서브 주인공인 이경우가 부모님도 모르게 학교를 안 간 사실을 잘 표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시대 아니 누구나 대한민국 청소년기를 거쳤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일 것이다. 그 시절 많이 다투고 말싸움하고, 때론 가슴 한편이 아려지게 죄송한 부모님.


하지만 편의를 위해서든 이야기 구조를 위해서든 232 작가의 <연애혁명>에서는 부모님(어른)의 존재를 삭제해 버린 만큼 현실성이 다가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학생들이 가장 핫하다고 느끼고 이슈라고 느끼는 것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투영시켰다. 더욱이 여성작가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롤 드립을 적소에 넣어 깨알 같은 웃음을 주는 한편, 각종 짤들을 보기 좋게 녹여 관련된 패러디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더 많은 생각을 주려면 웃고 떠드는 10대'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10대의 이야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90년대 학원물의 정점이었던 <굿모닝! 티쳐>와 같은 느낌의 작품이 되길 바란다. 90년대 시대상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때의 감수성 어렸던 고1~고3의 모습들을 잘 보여준 만큼 <연애혁명> 역시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 읽으면 오글거리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다 그렇다)


2015년 10월 8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