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끝난 뒤의 삶

— 내 이름은 빨강

by 송근존

아이리스 머독의 『그물을 헤치며』가

이해가 확신으로 굳어 버리는 순간이라면

이전에 다른 장면이 있다.

아직 아무도 “나는 안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이미 불안정한 세계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등장한다.

화가, 제자, 연인, 심지어 사물과 색까지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이 세계는 침묵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이 말한다.


처음에는 다양성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모든 입장이 존재하고,

모든 관점이 존중되는 듯하다.

그러나 읽을수록 느낌이 이상하다.

말은 넘치는데,

좀처럼 결정을 못한다.


모두가 설명한다.

누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어떤 맥락이 있는지.

설명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설명이 무엇을 바꾸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이,

누군가는 하루를 산다.

누군가는 결정 나지 않은 상태를 감내한다.

누군가는 이미 죽음에 이른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말이

현실에서 곧바로

누군가의 몫으로 남는다.


『내 이름은 빨강』이 보여주는 것은

확신의 폭력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등장하기 직전의 공백이다.

말은 충분한데,

책임질 곳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누군가는 이 말을 정리해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확신이 등장한다.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는 말은

말이 많아진 세계가 불러낸 해결책처럼 보인다.

머독의 소설은

그 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파묵의 소설은

그 확신이 왜 필요해졌는지를 보여준다.


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쉽게 누군가의 확신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확신이 등장하는 순간,

문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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