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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노트21화] 나는 나의 산파였다.

마음의 질서

by 민이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차가운 비바람이 뺨을 스칠 때,

마음은 마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뒤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마음의 질서를 휘젓던 생각들과 마주한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 감정은 왜 일어나는 걸까?

나의 욕구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을까?


손으로 따뜻하게 배를 어루만지듯,

내 마음을 읽어주며 다정한 언어로 다독인다.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화가 났을까?

상대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내가 진짜 원한 건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아닐까?”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내면의 대화 속에서 진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 그랬구나.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혼자 하는 산파법’이다.

‘자기 탐구의 산파법’이라고 할까.


‘산파법’은 본래 아이를 받는 사람, 즉 산파(midwife)에서 온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정신의 산파’라고 부르며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끌어내도록 돕는 대화법을 제시했다.


우리는 종종 문제의 답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다.

다만, 그 답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가르치는 대신, 질문을 통해 상대가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에 도달하도록 이끌었다.


나 역시 그 산파법을 나 자신에게 적용한다.

‘자기 탐구의 산파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마음의 질서가 돌아온다.

비바람이 잦아들고, 앙상한 가지에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다시 새순이 돋아난다.

그때 마음속에도 봄이 찾아온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 봄을 바라지만,

계속 봄만 이어진다면 성장은 멈춘다.

너무 편안하면 생기는 문제가 있다.

자극이 사라지면 뇌의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학습과 성취의 동기가 줄어든다.


“이 정도면 됐지.”

이런 정체감이 바로 ‘홈오스테이시스의 덫(Homeostasis Trap)’이다.

편안함을 유지하려는 본능 때문에

변화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적정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해로운 스트레스가 아닌,

성장을 자극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긍정적 긴장감 말이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둔 약간의 긴장은 집중력을 높이고,

새로운 목표의 부담감은 행동을 촉진시킨다.

낯선 환경의 긴장감은 적응력을 키운다.


‘긴장은 되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일 때,

우리는 가장 몰입하고 창의적인 상태가 된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면 번아웃이나 불안으로,

너무 적으면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 스트레스를 자각할까?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이 ‘적응해야 하는 압력’을 받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시험, 인간관계, 환경 변화 같은 외부 자극이나

걱정과 감정 같은 내부 자극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살짝 넘을 때 생긴다.


나는 오랫동안 원인을 모른 채

내면의 자극을 계속 만들어내며 살아왔다.

스스로를 지치게 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 덕분에

비로소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외부와 내부의 자극 속에서

스트레스를 인지하고, 그 강도를 조절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나아갈 때,

그 과정에서 마음의 깊이와 통찰이 자란다.


그 모든 경험은 언젠가

글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원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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