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탐구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다.
뛰어나거나 특별하지 않은, 그저 소박한 삶 말이다.
처음엔 평범함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자신만의 기준에서 어느 정도만 노력하면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 ‘평범’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우리는 비슷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그 안에서 ‘평범’의 기준은 자연스레 상향되거나, 때로는 하향되기도 한다.
사람은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공명(cognitive resonance)이라고 부른다.
공명(共鳴)이란 “진동이 통하는 것”이다.
서로의 에너지, 감정, 사고가 맞아 함께 울리는 현상이다.
주변의 관계가 평균 이상으로 상향되어 있다면, 나 역시 그 주파수에 맞춰 의식과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기준 속 평범함’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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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올챙이가 꿈꾸던 개구리가 되어가는 과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변엔 빨간 토마토개구리, 표범개구리, 청개구리처럼 화려한 존재들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문득,
과거의 올챙이 시절—단순히 ‘개구리로 자라길’ 바랐던 그 마음을 잊는다.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그 시절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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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지금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길까?
심리학적으로는 이를 쾌락적 순응(hedonic adaptation)이라 한다.
사람은 좋은 일이나 환경에 금세 적응하는 존재다.
처음엔 감사와 감동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옅어진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바라던 최신형 휴대폰을 손에 넣었을 때 며칠은 설레지만, 곧 ‘내 것’이 되어버린다.
이건 생존을 위해 ‘기준선’을 유지하려는 뇌의 자동 조정 기능이다.
그래서 행복의 순간도, 불편함도 결국 일상화되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광고와 SNS, 뉴스는
“남들은 이렇게 산다”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이때 우리의 ‘당연함’은 주변의 평균값에 의해 만들어진다.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내가 가진 것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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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익숙함의 망각’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있음의 기적’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공기, 누군가의 사랑,
몸의 온기조차 “항상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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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상향 평준화된 의식의 주파수 속에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익숙해진 것들을 다시 ‘낯설게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편리한 자동차 대신 잠시 걸어보기,
멀리 있을 때만 느껴지는 사람의 따뜻함 떠올리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며 외부 자극의 의존성을 돌아보기.
일부러 불편함을 경험하는 일은,
잃어버린 연결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해준다.
오늘 하루,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조용히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