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망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실험 같은, 굳이 사회에서 존재할 이유와 어디에라도 머무를 공간을 찾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내가 만드는 공간, 그 공간의 냄새, 공간에 투영된 색과 드러나는 감정들은 곧 평가의 대상이 된다. 들이마시기 전까지와는 아주 다른듯한 공기가 내 안에 들어온다. 직장에서 일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 이상으로 모든 선택에 대한 평가가 기다린다. 하루하루가 어떤 것으로 채워질지에 대한 처절한 답변이다.
12평의 직사각형 안에 서 있다. 천장에는 그나마 최근에 달았다는 듯 보이는 레일 조명이 있고 사무실로 쓰던 공간만큼이나 지루한 테두리가 벽면을 둘러싸고 있다. 바닥은 깔끔한 듯 보이나 진갈색의 나무타일이 촌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보이 왔던 예술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꽤나 당황스럽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우선은 허름해진 벽지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라도 시작할 틈이 보여서 다행이다.
처음부터 콘셉트도 기획도 없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곧 나였다. 검색을 하다가 유럽미장 후기를 보고는 바로 주문을 했고, 적당히 유튜브를 보고 미장재와 조색광물에 물을 섞어 벽에 바른다. 치덕치덕, 말 그대로 손으로 한 땀 한 땀 누르고 밀어야 한다. 페인트칠과는 차원이 다르다. 새삼 미장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내는지 체감했다. 판매자 말만 믿고 당초 10kg면 다 칠할 줄 알았는데 계속 모자랐다. 결국에는 30kg의 미장재를 썼다. 벌써 2주가 지나 있었다.
주변에서 보채는 소리에도 조급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업한다며 들뜨고 여기저기 떠들어대던 내 입의 결과이며 책임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매일 지나치는 사업장 월세보다 크게 느껴진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 편하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하루가 지나는 시간을 돈으로, 매일 나가는 고정비를 채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미치도록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