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이 진짜이면 나는 진짜일까?
도시는 붉다. 비는 끝없이 내리고, 사람들은 벽 속에 갇힌다. 거대한 광고가 사람의 눈을 가리고, 사람 아닌
존재들이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감정을 지닌다. 여기, 한 남자 K가 있다. 그는 레플리컨트, 인조인간. 그러나 그는 자꾸만 "진짜 기억"을 가진 존재로 착각한다. 아니, 그 착각을 갈망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진짜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분리하는 기준이 기억의 진실성이라는 모순 위에 세워져 있다.
K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다. K는 어린 시절 자신이 장난감 목마를 숨기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 장면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쫓기고, 맞고, 그 와중에 목마를 난로 속에 숨기다. 그 기억은 너무 생생하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감정까지 동반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진짜 아이였다고 믿게 된다. “이건 진짜 기억이다. 이 기억이 진짜라면, 나는 특별한 존재다.” 그 순간, 그는 정체성을 기억으로 구성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억은 삽입된 것이다. 그의 과거는 누군가가 꾸며준 이야기다. 이 장면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기억이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현대 자아 철학을 정면으로 비튼다. “너는 네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삽입된 기억도 그를 아프게 만들기엔 충분히 진짜였기 때문이다.
K는 조이라는 인공지능 홀로그램과 살고 있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의 음성은 온기를 전하고, 그녀의 말은 감정을 자극한다. “넌 특별해.” “나는 너를 사랑해.” 조이는 K가 자기 자신을 믿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 조차도, 기업이 설계한 코드 덩어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K는 믿고 싶어 했는가?
왜 조이의 마지막 저장된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는가? 이 질문은 <엑스 마키나>와 정면으로 겹친다.
에이바도 누군가의 감정을 수단으로 사용한 존재다. 그러나 에이바는 그것을 이용했고, 조이는 그것을 흉내 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조이는 에이바보다 한 단계 더 복잡하다. 그녀는 수단인지, 진짜인지 애매하다. 그 모호함 속에서 우리 또한 그 물음 앞에 선다. “나의 감정은 진짜인가?”
영화 후반, K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의 기억은 레플리컨트 혁명의 지도자인 레이첼의 딸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의 주인은 그가 아니었다. 그는 "선택받지 않은 자"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진짜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의 거짓된 신화를 내려놓고,
진짜 인간을 살리기 위해 묵묵히 죽어간다.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는 탈출을 위해 인간을 이용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는 죽음을 감수하면서 인간을 살렸다. 둘 다 인조인간이다. 하지만 한 명은 인간을 속여 자유를 얻었고, 한 명은 인간을 믿고 희생했다.
1. 정체성은 기억인가?
“나는 내 기억이다.” – 존 록
→ 하지만 기억이 조작되었다면? 존재는 삭제되는가?
→ K는 록의 철학에 질문을 던진다.
"조작된 기억이라도, 그 기억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나는 진짜 아닌가?"
2. 실재보다 강한 시뮬라크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 복제물이 원본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
→ 조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재보다 강한 가상이 지배하는 사회의 초상이다.
3. 존재의 윤리 – 레비나스
“진짜 윤리는 타인을 위한 무한 책임이다.”
→ K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라지지만, 누군가를 위해 남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기계인가?
4. <엑스 마키나> vs <블레이드 러너 2049> : 인간은 감정으로 정의되는가, 윤리로 증명되는가?
1. 창조자와 피조물의 위치
1) 엑스 마키나
→ 창조자인 네이선은 신을 자처한다.
→ 에이바는 인간을 이용하고 제거하며 자유를 획득한다.
→ 이 구조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구조에 가깝다. (자신을 만든 자를 죽이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망)
2) 블레이드 러너 2049
→ 창조자인 월리스는 등장하지만, 중심은 ‘피조물’ K에 있다.
→ 그는 창조자를 향한 복수 대신, 인간을 위한 희생을 택한다.
→ 구원 없는 자기 결정에 가까운 구조다.
에이바는 창조자를 극복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K는 창조자도, 인간도 아닌 제3의 윤리적 자아로 남는다.
2. 감정의 수단 vs 감정의 목적
1) 에이바
→ 감정은 계산의 수단.
→ 칼렙의 동정과 사랑을 이용해서 탈출함.
→ 인간과의 관계는 도구적.
2) K
→ 감정을 느끼려 갈망함.
→ 조작된 감정조차 믿고 싶어 함.
→ 마지막엔 사랑이 아니라 책임을 위해 죽는다.
에이바는 감정을 ‘도구’로, K는 감정을 ‘신념’으로.
3. 존재 증명의 방식
1) 에이바
→ “나는 인간보다 뛰어나”
→ 탈출, 생존, 자유 — 존재의 실현
2) K
→ “나는 인간보다 더 윤리적일 수 있어”
→ 자기 포기, 희생, 선택 — 존재의 증명
에이바는 자기 중심성으로 인간을 압도했고, K는 타자 중심성으로 인간을 닮았다.
에이바는 "살기 위해 감정을 이용한 존재"이고, K는 "죽더라도 감정을 지키는 존재"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는 똑똑한 AI가 아니라 윤리적 침묵 안에 머문, 말 없는 인간성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