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준 돈보다 무거운 건 마음
돈이 급하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았다.
평소에 잘 지냈던 친구였고
금액도 아주 크진 않았고
며칠 안에 갚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송금 버튼을 눌렀다.
‘좋은 일 했네’ 하고,
나 자신을 조금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약속했던 날짜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문득 떠올랐지만
‘바쁠 수도 있지’라며 넘겼고
며칠 더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이
나는 괜히 친구의 SNS를 훑었고,
어디에 돈을 썼을까
혼자 추측하고, 혼자 서운해졌다.
“혹시...그때 빌려간 거 언제쯤 괜찮을까?”
조심스럽게 꺼낸 내 말에
친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아, 미안! 요즘 좀 빠듯해서... 다음 달엔 꼭!”
그 말 이후 ‘다음 달’은 몇 번이나 더 지나갔다.
그때부터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였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점점 짧아졌다.
약속도, 연락도
조금씩 줄었다.
그 사람은 내게
‘돈을 빌려간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사람에게
‘돈을 재촉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이 슬펐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었는데.
지금도 그 돈은 못 받았다.
아마 앞으로도 못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보다 더 아까운 건
그때 내가 건넨 신뢰와 마음이었다.
그건 이자로도 계산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고
기한이 지난다고 자연스레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 사건 이후
돈을 빌려달라는 말이 들어오면
정중히 거절한다.
이젠 안다.
돈은 사람 사이의 ‘온도’를 바꾼다는 걸.
그리고 그 변화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그래도 이상하게
그 친구가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어쩌면 그때는
그 사람도 정말 힘들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돈을
어느 날 갑자기 받을 수도 있고
끝내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일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사람을 믿고,
어떻게 나를 지킬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