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로는 점유자, 현실에선 누군가의 삶이었던 공간
경매 초보였던 나는 입찰 결과만 보고
성공한 줄 알았다.
적당한 시세, 괜찮은 위치,
잔금도 무리 없이 준비했고
마음속으로 이미 ‘내 집’이 된 듯했다.
하지만 그 집엔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주소는 내 이름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명도를 해야 했다.
법적으로는 내가 권리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공간은 비워져야 했다.
하지만 문 앞에 서는 순간,
그건 숫자나 서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커튼 뒤로 비치는 불빛,
신발장 옆에 놓인 아이 신발,
문득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일상을 흔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난 입주자는 예상보다 조용하고,
오히려 담담했다.
서류는 이미 받아봤다며
‘조만간 나갈게요’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달, 두 달이 흘렀고
집은 그대로였다.
나는 매일같이 고민했다.
더 세게 나가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이 점점 작아졌다.
명도 소송을 준비하며
나는 자꾸만 지는 쪽의 감정을 느꼈다.
그들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나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긴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집이 비워진 날,
나는 허무했다.
그 집은 비어 있었지만,
내 마음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경매는 숫자 싸움이라지만,
명도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로도 여러 건을 들여다봤지만
문득문득 그 집의 커튼과 현관 앞 신발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입찰서를 쓰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사람의 삶이 걸려 있는 공간이라는 걸,
한 번의 경험이 오래 가르쳐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