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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주사위

생각해보면 괴로울 이유가 없다

by abecekonyv
"서양 책인가요? 어려운 것이 쓰여 있겠네요." "아니......" "그럼 뭐가 쓰여 있는데요?" "글쎼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호호호호. 그래서 공부하시는 거예요?"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이렇게 펼치고, 펼쳐진 데를 적당히 읽고 있는 겁니다." " 그래, 재미있나요? "그게 재미있습니다." "왜요?" "왜라니요, 소설 같은 건 이렇게 읽는 게 재미있습니다." " 상당히 별나시네요." "네, 좀 별납니다." "처음부터 읽으면 왜 좋지 않은데요?"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안 된다면, 끝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니까요." "묘한 논리네요. 끝까지 읽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풀베게> 나츠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운이 좋지 않다는 것은 하나의 단면만 보는 것이다. 사실 좋고 나쁜 운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 좋은 일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좋았던 일들이 나에게 손해로 오기도 한다. 따라서 인과율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인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최악으로 치부한다면, 죽는 것 외에는 사실 생물로서 나쁜 운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모호하다. 나는 가끔은 전문가라는 게 모든 실패를 맛봐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실 시험에 통과하고 자격을 부여받는 것과는 별개로, 전문가를 신뢰 할 만한 보증은 그들의 경험에 있다. 따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실패를 맛봐야 한다. 그것이 전문가의 이름 값을 드높이기 때문이다. 시험에 붙거나, 자격을 얻는 것은 사실 운의 작용이 크다. 항상 돌아가는 것들을 우리는 안 좋게만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문가를 만드는 길임을 모르고 있다. 세상 사는데 표면적인 성취만을 이루고 산다면 전문가란 타이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의 이름 값을 하려면 합당한 많은 삽질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들은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자신의 몸을 쾌락에 내맡긴 사람들은 한 번에 죽거나 불구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말하는 건 무엇일까. 사실 우리의 운이라는건, 시점과 판단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병을 일찍 발견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혹은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육체를 죽음에 치다르도록 소비하여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였던 인생이라면, 자신의 육체가 불구가 되어가는 것 쯤은 예상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운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해석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불운을 과대 해석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전을 좋아한다. 쓰이지 않는 벽자僻字나 고어들을 찾아보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단어들도 보게된다. 정의가 쓰여지지 않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단어들도 보게 된다. 단지 입말로만 남아있는 것일까. 단어들의 소실은 항상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A부터 Z까지 처음부터 보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대로 펴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전에 펴봤던 곳들은 나의 기억이 어렴풋이 다른 곳을 펴라고 지시한다. 따라서 그것을 랜덤으로 보게 된다. 내가 어떤 단어들을 만날지는 계획되어 있지 않다. 아무곳이나 펴본다. 단어와 조우하는 것은 순전한 운에 내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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