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악의 재능

유쾌하던 진지하던 넘어서야 한다

by abecekonyv

술 같은거 마셔도 인생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이 모든 일에 실효를 따질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취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술 한잔에 잊을 수 있는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은 꼬여버릴 수도 있다. 추운 곳을 나기위해 보드카를 마셔야 했던 러시아인들을 제외하고는 술에 대한 실용성을 따져보지는 않았던게 아닐까. 실용성의 문제를 완전히 벗어나기란 힘들다. 부유하는 이론은 검증의 대상이지 완전히 부유한 미래 도시처럼 버틸 수는 없다. 시간이 그것을 검증해주길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벗어난 이론이 존재 할 수는 없기에 그것이 검증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음악은 과연 실용성이 없는가. 혹은 음악은 과연 니체의 말대로 디오니소스적인 고취만이 존재하는가는 따져봐야 하다. 나는 이미 아폴론적인 음악의 가능성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그러나 이젠 음악이라는게 그것들을 초월해야 하지 않나 싶다. 속요俗謠나 군가軍歌를 나는 음악이 지향해야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음악이 지나치게 부유하지 않으면서 현실과 관계한다. 섬집아기같은 동요. 동요들은 오로지 달아오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씁쓸함을 아이들에게 암시하는 듯이, 동화가 아이들에게 말하듯이 불러진다. 섬뜩하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동요나 동화가 섬뜩하다면, 그것이 현실과 관계하는게 증명 된 셈이다. 군가의 목적성은 단일한 방향을 주도하기에 조심해야한다. 그러나 내가 군가를 말한 것은, 사회의 기능때문에 그렇다. 지금의 시대는 한 방향으로의 전진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회사나 공무원들의 시스템은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조직의 효율성 증대와 이익 집단으로서의 영리 행위. 사회에서 목적성을 부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군가와 같은 음악들은 내가 지향해야 한다는 음악과 비슷하지만,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관계하는 음악을 쓴다는 것은 거의 양쪽의 극을 모두 본 이후의 것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부유하는 음악과 세속적인 음악이 있다. 그것들을 직관으로 얻어내고 쓸지라도 경험이 비어버린 개념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극단에 대한 고찰과 경험이 갖춰진 이후 쓸 수 있는 고단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일상과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이 결합되어 있다. 그의 가곡 멜로디들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그것들을 듣고 있자면, 독일인들의 생활상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음악 이론적인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토벤 사후 만나보지 못해 슬퍼했다는 일화들을 보면 얼마나 내성적인 사람인지 감이오는 대목이다. 음악의 진지함은 베토벤이 대표한다. 수학의 가우스와 같은 인물은 아마 베토벤이 아닐까 싶다. 양극단의 조화. 그리고 지나치게 웅대하지 않은 철학성.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말하는 멜로디. 베토벤을 진지하게만 볼 수 없다. 그에겐 멜랑콜리한 멜로디 조차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음악에서는 명랑함이 미덕이기도 하지만, 떄로는 아니다. 명랑한 군가들은 선전을 말한다. 제국주의 시절의 군가를 들어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광기에 빠져있다고 여길 것이다. 카미카제들의 군가, 나치 친위대의 군가, 스탈린의 군가, 파시즘의 군가, 아나키스트들의 군가 등. 명랑한 군가들은 이웃 국가들을 쳐부순다. 명랑하기만한 음악은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군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군가나 교가校歌는 같은 것이다. 목적성이 분명하다. 군가의 목적은 조국 수호, 전쟁에 대한 사기 진작 등에 맞춰져 있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성을 노골적으로 알린다. 그러나 목적성을 내세울 수는 있어도 조심해야 한다. 음악은 내세우는 순간 추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바라보더라도, 유쾌하게만 바라보더라도 음악은 추해진다. 따라서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술의 취기는 우리를 북돋우지만 행동을 교란시킨다. 옆자리 테이블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경찰에 연행되기도 한다. 음악은 사기 진작만을 말하지 않는다. 메세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음악은 내부적으로 점점 소멸하는 것이다. 지휘봉이 허공에서 매듭짓는 순간 음악은 끝이 난다. 음악이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는다면 오히려 위험하다. 음악은 연주회 안에서 끝나야 한다. 점점 소멸되는, 한 번에 종결하든 음악은 거기서 끝나야 한다. 음악은 우리의 그림자이지 타인이 아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구에게나 하는 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