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게 마냥 우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인생을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깎는 것과 넓히는 것. 이것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자면 실력과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깎는 것은 사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연필을 깎을 때 의식해서 깎는다. 바늘 끝에 분자 단위까지 갈아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의식을 첨예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새로움은 넓히는 것이다. 삶에 일정하게 자극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항상 열려있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모래사장에서 땅을 파본 사람들은 아는 법칙이 있다. 손으로 아무리파도, 삽으로 아무리파도, 깊게 팔 수록 구멍 벽의 모래가 무너져내려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따라서 깊이 파고 싶다면 넓게 파야한다는 필연적인 결론이 나오게 된다. 넓힌다는 것은 사실 더 깊게 들어간다는 이야기와 같다. 따라서 깊이 파다가 막힌다면, 옆의 벽을 허물어버려야 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이나 영어 단어를 무식하게 많이 외운다는 생각이다. 이젠 솔직히 하루에 한 단어라도 제대로 배우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영어라면 신물이 난다. 지겹기 때문이다. 소세키 같이 서양 문물을 비교적 처음 배운 세대들에게나 신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영어를 잘하진 않지만, 이젠 전혀 새롭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12년을 영어를 배우니 쉽다고 느끼지 원래는 어려운 언어라고 하지만, 얼마든지 어려운 언어야 넘쳐난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영어 하나로 끝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세상에 언어를 여러 개를 모두 잘 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국어를 우리가 두루 책 읽는 듯이 읽을 수는 없는 걸까? 사실 나는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 문법서나 사전을 그냥 한 페이지 읽던가 말던가 한다. 그게 공부가 되냐 그럴 수 있다. 나름 도움이 된다.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하는 시간이다. 수학이 어려운 이유는 사실 인내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수학과 언어의 공통점은, 혹은 모든 분야의 공통점은 열정과 인내의 부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에게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만 엄격한 마음 속의 대심문관이다.
사전은 나에게 다른 차원의 책이다. 사전 출판에 대한 서문을 읽다 보면, 출판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헛되다는 것도 스스로 느끼는 것 같다. 단어야 죽기도하고 사라지기도하고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들을 한 권의 책에 모조리 망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야 이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편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시대만이라도 최대한의 노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인간 찬가적인 마음가짐이다.
점점 나이가 들 수록 뇌의 구조가 추상화 된다는 느낌이 있다. 두루뭉술 본다는 이야기이다. 세부적인 구체성에 눈을 번뜩이지 않고 개념적으로만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게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효율이 빨라진다는 이야기지만, 새로운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화의 필연이기에 뭐 더 이상 말 할 건 없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만이 남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인간이란 어디 노르웨이 산골짜기에 던져 놓아도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것을 바라는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이 생존하는 삶. 마인크래프트의 스티브. 그래서 그런지 내 유년의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였다. 애초에 문명이전에 우리는 자연인이다. 그것을 망각할지라도 태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방황할 때 마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품을 허락하기 떄문이다.
양에 집착한다는 것은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외부 성과가 의미가 없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벗어나도 실적 경쟁이야 어디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쯤 되면 그게 하등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진다. 못 깨닫는다면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뜨거운 걸 차갑다고 느낀다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게 좋다. 그게 쉬는 거기 때문이다. 쉬는게 가장 날카로운 것이다. 뭉툭하게 변질된 요령들에 대해 신경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