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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

떠난 인연도, 머무는 인연도 모두 나를 지나간 시간들

by 구름 위 기록자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서 살아온 나는,

가장 익숙한 곳을 떠난 대신
머무는 모든 곳에서 스스로 기댈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안정을 주는 공간이든,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사람들의 존재든,
이방인으로서의 삶에는 늘 ‘의지할 지점’을 만드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생활 반경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마음을 건넸다.
받는 마음만큼 주는 마음도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되고 싶어 했다.


좋은 인연도 많았다.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이 덜했던 건 결국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버티며 통과한 시간은 지금도 정확한 온도로 남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연을 쉽게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무게가 되어 있었다.
상대의 이익을 위해 마음이 소비되는 순간을 겪기도 했고,
그 관계를 지키려는 욕심으로 휘두른 칼날이
오히려 나를 베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서서히 멀어진 관계들도 있다.
서로의 잘못이 아니었고, 오해도 없었다.
다만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런 관계가 더 오래 마음을 붙잡았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뭘 놓쳤을까. 더 잘했어야 했을까.’
그 질문에 맴도는 시간은 길었다.


중학교 시절 누구보다 자주 함께했던 친구가 있다.
집도 가깝고 가족끼리도 친해,

끈끈하다고 믿었던 사이.

그러던 어느 겨울날.
말투 하나가 공기를 얼릴 만큼 예민해져 있던 시기,
싸우지도 않았는데 모든 말이 어긋났던 그 하루 이후

우리는 멀어졌다.


시간이 지나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여행으로 근처에 왔다며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겨울의 온도도, 그날의 어색함도 기억났지만
왜 멀어졌는지는 흐릿했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다.


점심 자리에서 그녀는 말했다.
“여기 네가 사니까 오늘 점심은 네가 사면 되겠다?”
대화는 과거에만 머물렀고 지금의 삶은 공유되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만 남고, 현재는 없는 관계.
그렇게 조용히 흘려보내면 되는 인연도 있다.


다시 이어지는 인연도 있다.
어떤 계기로 멀어졌는지조차 뚜렷하지 않은 사이.

서로의 거리와 시간이 달라졌을 뿐
그저 그렇게 멀어진 관계.
그런 인연은 들쑥날쑥한 끊김마저 불편하지 않다.


가끔 그 겨울이 생각난다. 그녀와 함께 '레이첼 야마가타 콘서트'를 보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서는 발끝에 눈이 포근히 쌓이고 있었다.
찬 계절이었지만, 이상하게 기억 속 그날 밤만은 마음이 춥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문득 예전에 너랑 저녁 전에 만났었는데…'로 시작해서
갑자기 왜 10년 전 일이 생각나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라고 끝난 메시지.


나는 잊고 있던 장면이었고
그녀는 그것을 또렷하게 꺼내놓았다.
과거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재와 앞으로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서로의 안부와 요즘의 생활,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붙잡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관계는 아니었다.
어떤 인연은 제때 머무르고
제때 떠남으로써 완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치 못할때 다시 나에게 오기도한다.


기차에 비유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역에서 타고 어느 역에서는 또 내린다.

누군가 내렸다고 해서 함께 본 풍경과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이 있었던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인연이 있고,

다음 승객을 맞이할 자리 하나를 남겨두는 일 역시 삶의 한 부분이 된다.


떠난 인연도, 머무는 인연도 모두 나를 지나간 시간들.

떠나간 사람을 오래 붙잡아두기보다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의 시간을 아끼는 일.
그 마음만 지켜도 관계는 훨씬 단단해진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날들이 생겼고,
다시 찾아오는 마음들도 있었다.
계절처럼 흐르고, 계절처럼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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