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남긴다는 것
문구점에서 산 500원짜리 깍두기공책에서 다이어리에서 아이폰 메모앱에서 구글 Docs에서 이곳에 왔다.
글을쓴다는것.
성장기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일기를 쓰곤 했다. 잊고 싶지 않은 하루의 기억을 문장으로 남기고 싶거나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감정들 때문에 손으로 눌러 담아가면서 쓰는 것으로 풀기도 했다.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끼기도 하고, 지나간 후에 다시금 읽어보며 스스로를 비웃기도 격려하기도 했다. 그저 그게 다였다.
읽는다는것.
어린 시절 부모님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TV는 바보상자이고 책을 가까이해야 똑똑하고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할 때니까. 그중 누구보다 책을 멀리했던 어린이였다. 이상하게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도 먼 나라이웃나라 만화책을 보는 것이 싫었고, 노빈손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당시 초등학생들의 베스트셀러) 조차도 나를 유혹시키진 못했다.
그렇게 자라다가 수능 언어영역을 마주쳤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가 먼 나라이웃나라를 읽고 만화로 보는 삼국지에 흥미를 느꼈다면 나의 등급이 달라졌을까? 이러나저러나 성인이 되기 전 독서와 나의 친밀도는 수능이라는 현실에서 마주친 나의 일방적 후회로 끝이 났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많은 학생들이 각자만의 로망을 갖고 간다. 이를테면 대학 가면 연애를 해야지, 자취를 해야지 등등 나에게 로망 중 하나는 알바였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함은 단순 시간당 노동력의 대가를 시급으로 환산하여 지급받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아르바이트 하다 생길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생각보다 금방 알아차린 케이스이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아르바이트를 찾으려고 했다.
대학교내 근로학생이라는 것이 있었다. 모든 대학교에 있겠지만 교내시설에서 학생들이 업무를 도와 일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개념이다.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당시 머릿속에서 경쟁률이 제일 적을 것 같은 무엇보다 학생들도 많이 안 오는 교내 시설은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 바로 도서관에서 근로를 시작했고, 이때서야 결국에는 읽는다는 것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억지로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지금, 쓴다다는것.
그렇게 한참을 소설을 좋아했다. 특유의 몰입감이 좋았고 무엇보다 책을 흥미롭다고 느끼게 한 장르였으니까. 그러다가 에세이를 읽었을 때, 작가가 쓴 자신의 경험을 눈으로 따라갈 때, 나도 모르는 새 머릿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서 비슷한 문장들로 문체로 나열하고 있었다.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어 소설을 좋아했는데, 수필은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생각이 도저히 멈추지 않아서.
현실에서 모든 일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땐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각색된다. 당사자여도 아니어도 떠올리는 이의 마음을 담고서는. 나도 나의 시선에서 현실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행동에 이유가 보일까? 조금은 더 솔직하고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이기적인, 계산적인 모습이 보일까? 내가 지금 쓴다는 것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