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학교 시절, 나는 6학년 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글씨를 반듯반듯하게 쓴 탓인지 담임선생님께서 나한테 판서를 하라고 하셨다. 몇 개월을 판서를 하다가 힘들었는지 선생님한테 더는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판서를 하고 내 공책에 다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혼자 공책에 필기하는 게 불편했었나 보다.
내가 칠판에 글자를 쓰고 있으면 선생님은 교탁에 왼손을 괴고 창문 너머 먼발치를 쳐다보며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콧구멍에 넣은 후 후벼 파서 코딱지를 허공에 던지곤 하셨다. 센티멘탈해서 창문 너머를 쳐다보며 멍을 때리는 유형은 아니었던 거 같고, 그냥 학교 선생님이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못 하겠다고 선생님께 선언한 후 나는 선생님에게 미운 오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가장 뒷줄에 앉아 있던 나는 바로 앞줄에 앉아 있는 친구가 책을 읽고 앉기 전에 의자를 살짝 비켜두었었다. 몹쓸 장난기가 발동한 거다. 책을 다 읽은 친구가 의자에 앉을 때 교실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걸 보려는 행위였으리라.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다. 그때 종종 했던 우리들의 놀이였다. 근데, 선생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4유형의 기질중 담즙질이었던 거 같다- 나한테로 성큼 다가와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네가 그랬지?”하신다.
무서웠는지 얼떨결에 “아니요”하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이 사건은 확대되어 갔다.
선생님이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나를 교무실 복도 앞에 있는 굵은 자갈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들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야말로 원산폭격이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무지막지한 체벌에 놀랐지만, 따라야 했다.
한 참 벌을 서고 있는 중에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네가 왜 거기 있니”하면서 한 마디 씩 하고 지나가신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고통스러운 거 이상으로 일생 최대의 모멸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학급 바로 앞 자갈 깔린 바닥 놔두고 굳이 교무실 앞 자갈밭에서 벌을 세웠어야 했는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다.
시간이 지난 후 교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선생님이 반 아이들과 투표까지 하셨다. 모두 내가 그 나쁜 짓을 했다는 거다. 거기다 옆 짝이었던 다른 동네 남자아이는 “네가 그랬잖아!” 하며 찬물을 끼얹는다. 선생님의 행위에 적극 동조한다.
공부는 꽤 했지만, 심한 개구쟁이어서 학급 임원이 한 번도 되지 못한 아이다. 지금 기억으론, 똑똑해서 돋보이기도 했으나 코를 질질 흘리고 다녔고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던 아이는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민낯을 그 순간에 드러냈다. 의식했던 상대가 가장 약해졌을 때 드러내는 그것은 수동공격이었다. 어떤 아이는 통밥으로 내가 그랬을 거라 추측하기도 했겠지만 선생님의 권위에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고 투표에 참가했을 것이다.
요즈음도 그때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면 요동을 친다. 자신의 생각의 결과가 아닌 다른 권위 있는 누군가를 따르고 움직이는 사람. 권위에 복종하며 그것이 순리라고 떠드는 사람. 그것을 등에 업고 승승 하는 사람.
그게 그렇게 확대되어야 할 만한 사안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어린 내가 감히 선생님이라는 권위에 자기 의사를 표했다는 거 자체가 반항이라고 여겨서 노발대발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고, 나 딴은 오랜 시간 관계 때문에 힘들었을 듯하다. 어린 학생의 입장, 마음을 읽어주는 선생님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때 군말 없이 선생님의 지시에 부응했더라면 그런 악몽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무리 곱씹어봐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판서를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게 최선이었다.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믿음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동안 선생 노릇을 하면서도 ‘선생님처럼 보인다는 말’이 불편하게 와닿았던 건 내 안에 그런 해결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은 중학교 2학년 초쯤이었을까.
선생님은 교육청에 출근하면서 무단횡단을 하다 그만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인과응보를 떠올리기도 했다. 선생님다운 죽음을 자초한 게 아닌가 싶다.
왠지 고소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게 슬프기도 하였다. 복잡 미묘하면서 난감한 기분을 처음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