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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적인 창으로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다

-『초록빛 모자』 『오리야? 토끼야?』

by 어느니


6년 전, 단 둘 뿐이던 언니마저 잃고 30세의 기정은 혼자 살고 있다.

외부와의 관계나 접촉은 드물고 여느 사람관 좀 다른 시인을 꿈꾼다.


“마음속 문에 빗장을 질러 놓아 아무도 그것을 엿볼 수 없게 할 수는 없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을 감췄길래 들키기 싫어서일까,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남장을 하고 다니는 지도 모르겠다.

무용수가 꿈이었던 언니. 손가락 하나 없는 거 빼곤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던 언니가 좌절 끝에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가 세 번째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무척 신경을 썼던 언니에 대한 반작용인지, 기정은 의도적으로 콘택트렌즈를 거부하고 뻐드렁니를 고수하며 외적인 아름다움을 도외시한다. 인정(人情)이 그리운 날은 남장을 하고 외출한다.

자살을 시도한 언니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뛸 때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던 자신의 속마음도 모른 채 자신을 혼자 두고 죽음을 택한 언니에 대한 강한 배신감과 상실감, 그리움이 까닭일 수 있으리라.

언니가 제재소에서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니던 초등학교 3학년 때 병원에서 언니의 초록빛 모자를 잃어버렸다. 언니가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초록빛 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모자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기정에게 담뱃불을 요청했던 낮에 만났던 남자다. 군악대가 행진하는 저녁 길거리에서 그 남자는 다시 나타난다. 순간, 기정은 초록 모자의 환영(幻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피투(던져진)하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기투(선택하는)하는 삶의 존재로서의 나. 그 초록빛 모자를 내 안에서 끊어내는 것이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란 걸 알아차린다. 기정은 언니에 대한 집착과 실재하지 않는 환영의 사슬을 자르기 위해 솟구치는 힘을 모으고 모은다. 버둥대던 캄캄한 방에서 스위치를 탁 누르는 순간이다.

기정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는 방식, 상황에 따라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나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 어떤 시점에서 내가 느끼는 것, 나의 가치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의 차이를 체득한다. 때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오리일까? 토끼일까?

아이든 어른이든 오리나 토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애매모호한 그림에서 어떤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오리와 토끼가 담겨 있는 그림에 대한 시선을 두고 설왕설래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오리로 보이기도 하고 토끼로 보이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인다. 내가 보고 싶은 부위나 나의 시선에 따라 인식되는 것에 각자 한 표를 던진다.

특정부위를 보고 인식한다. 주장한다. 욕구가 드러난다. 각자 감각, 욕구,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자기 방식대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다가 상상을 한다. 상대가 보고 한 말이 맞는 거 같다며 인정을 한다. 서로 화해한다. 그러다 또 다른 사물이 나타나자 다시 의견이 달라진다.

우리는 같은 그림이나 현상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기정이 그랬던 것처럼.

오리나 토끼 둘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아니지만, 동시에 둘 다 성질을 일부 가진 상태

‘같은 것을 보는 것’,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양립할 수는 있는가? 미해결 과제로 남을 것인가?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개체가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지각하는 것도 전경과 배경의 관계로 설명한다.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그 순간에 갈증이 전경으로 떠오르고 다른 것은 잠시 배경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게슈탈트를 형성한다는 말은 개체가 어느 한순간에 가장 중요한 욕구나 감정을 전경으로 떠올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전경은 항상 배경에서 출현하고 배경이 없이는 전경이 형성될 수 없다. 건강한 유기체는 매 순간 배경으로부터 명확한 전경을 형성하고 유연하게 이동한다.


전경과 배경의 교체는 유기체 욕구와 환경적 여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개체가 게슈탈트 형성을 하지 못했거나 게슈탈트를 형성하긴 했으나 이의 해소를 방해받았을 때 그것은 배경으로 남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경으로 떠오르지도 못하므로 중간층에 남아있게 된다. 개체는 게슈탈트를 완결 지으려는 강한 동기를 지니고 있는데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계속 전경으로 떠오르려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경이 되고 관객이 되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완결되지 못한, 해소되지 않은 게슈탈트를 미해결 과제라고 한다.

미해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알아차림이란 자신의 삶에서 현재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방어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각, 체험하는 행위다.

그림책 『오리야! 토끼야!』는 그림에서 와닿는 인식의 깊이나 정도가 매우 크다. 차라리 문자가 없어도 괜찮을 법하나 적은 수의 글이 인식작용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굳이 해석이나 설명보다는『오리야! 토끼야!』책을 접촉하게 되면 피부로, 가슴으로, 머리로 확 밀려오게 될 것이다. 그림과 글을 통해 아하! 통찰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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