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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면, 나의 바다를 향해가는 여정

-안경미<가면의 밤> 루리<긴긴 밤>

by 어느니


그럴싸한 나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찌질한 사람들 모습에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나는 안 그런 사람 마냥. 아니, 결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마음이 쿵쿵 뛰어서, 끝내 세 번째 보름달의 밤에 가 보기로 했다.

뒷산 ‘검은 입’ 참나무의 큰 구멍.

긴 굴 끝에서 움직이는 수천 수만개의 얼굴을 한 버섯들을 발견한다.

가면을 피우는 버섯.

가면은 진짜 얼굴이 아니라고 외쳐보지만, 근사해 보이는 얼굴 하나를 발견하곤 멋진 나를 골라 새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쯤은 돼야 나라고 할 수 있겠지.

공부, 운동, 발표, 청소, 요리까지 퍼펙트!

그렇게 인정받는다는 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내 모습을 눈치라도 챌까 봐 안절부절.

다시 보름밤에 새로운 얼굴로 바꿨다. 사나워 보이는 얼굴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거다.

강하고 자유로운 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니까 따르는 애들도 생겼지만, 주변엔 사람들이 사라지고, 외톨이가 되었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상냥하고 쾌활한 나를 좋아해 주었지만, 밝고 명랑한 나는 누구든 좋아하고 필요로 했다.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찾았고, 내가 피곤해서 함께하거나 들어주지 않으면 ‘너 답지 않게 왜 그러냐’ 며 서운해 했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다.

좋은 가면, 나쁜 가면, 슬기로운 가면, 슬픈 가면, 구불구불하거나 알록달록한 가면 등등을 써 보았지만 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침내 있는 듯 없는 듯 투명가면을 썼다. 갓 쓴 사람이 자기 얼굴이라고 달라고 요구하였다

투명한 가면은 자신을 방어하기에 안전하다고 여겼을테니, 서로 자신의 얼굴이 되길 원한다.

입은 있으되 소리 내지 않고, 본 것은 있으나 제대로 모르거나 아는 척, 숨은 쉬고 있으되 숨죽이며 사는 삶 말이다.

얼굴을 잃어버린 채 집에 돌아갈순 없었다. 연못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니 내가 쓴 가면과 아직 쓰지 않은 가면이 뒤섞인 묘한 얼굴이 익숙하게 와 닿았다.

검은 입 밖으로 나와 거리를 오고 가는 뭇사람들을 보았다. 뒤섞인 저마다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고마고만한 가면들...

그래서 우린 모두 비슷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자 칼구스타브 융이 말하는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 사회에 좋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것, 사회에 공적으로 보여지는 가면, 사회에 순응하는 것 말이다. 개인의 인격에서 페르소나는 이점도 있지만 자기역할에 지나치게 빠져 사로잡히거나 주어진 역할과 나자신을 동일시 할 경우 다른 측면이 약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일부가 아니라 오로지 나라고 여기는.

지나친 페르소나가 개인의 욕구를 억압하고 획일적 기준으로 전체에 적용시키게 되면, 개인의 내면과 더불어 사회도 불안해진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 다면적인 내 모습의 간극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지 말이다.

허상에 머무를것인가 깨뜨릴것인가.

가면이 벗겨질까봐 두려워 가면을 진짜 나라고 나조차 속이고 있지 않다면, 진짜 자기모습을 알고 있다면 괜찮다는 것.

진짜 내 얼굴은 어딨을까, 지하상자에 처박아넣어 두었으니 나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건 아닌가 말이다.




나의 본래 진면목을 찾고자 했으나 두려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무턱대고 긴 여행에 나선 이가 있었으니.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의미가 되어가는 루리의 <긴긴 밤>, 나만의 바다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함께 하였으나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노든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다른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으나 머뭇거리자 할머니 코끼리는

“너에게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직접 가서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바깥세상을 나온 노든은 다른 코뿔소를 만나 가족을 이루었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완벽한 밤, 인간의 피습에 아내와 딸을 잃게 되면서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든의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노든은 딸과 아내를 잃고 동물원에서 탈출해서 복수를 꿈꾼다. 앙가부와 치밀하게 계획하였으나 사냥꾼이 앙가부의 뿔과 목숨마저 앗아가기에 이른다.

파라다이스 동물원에서 발견된 버려진 펭귄알을 품어준 치쿠와 윔보는 이름없는 펭귄의 아빠가 되어 주었다.

살면서 걱정이란 걸 해 본 적 없는 치쿠와 윔보는 치쿠가 오른쪽을 잘 보지 못하게 되면서 윔보는 치쿠의 눈이 되어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어떤 의미가 되는 것. 이런 그들에게 버려진 알은 걱정거리 투성이었다.

훌륭한 펭귄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펭귄으로 키우기 위해서 말이다.


온몸으로 알을 지켜내다 윔보마저 전쟁으로 잃고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드는 치쿠와의 긴긴밤은 계속되었다.

서로는 ‘우리’ 가 되어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다. 노든과 치쿠의 바람은 바람보다 빨리 달리고 싶은 거.

그 소망을 함께하며 펭귄 치쿠의 입은 양동이 안의 알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고된 여정속에서도 온 힘을 다했지만 끝내 노든에게 마지막 임무를 맡기고 눈을 감는다.

버려진 알에서 깨어난 세상의 하나뿐인 고귀한 펭귄에게 세상에 살아남는 법과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도록 가르친다. 노든은 펭귄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펭귄에게 주었다.


노든과 펭귄은 누구도 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몰랐지만 자신의 바다를 찾아서 걷고 또 걸었다.

험난하고 고단한 세상의 풍파를 겪는 긴긴밤과 그 여정을 헤쳐 나가면서 얻게 되는 지혜의 긴긴밤이다. 둘의 긴긴밤은 빛과 어둠이 그러하듯 노든과 펭귄, 어떤 기운에 연결되어 있었다. 자신의 바다를 찾아가는 노든은 죽는 것보다 무서운 건 자신과 마음을 나눌 코뿔소가 없다는 것. 옛 추억을 되새기며 절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러다 금방 노든은 마음을 바꾸었다. 제멋대로인 펭귄을 만나 불행을 잊고 사는 건 행운이라고...

“처음에는 호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헤엄쳤다. 몸이 이렇게 가볍게 움직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또 한 번 알을 깨고 나온 것만 같았다. 물살을 가르는 기분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물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두려웠지만 노든이 있었기에 한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노든, 나는 누구예요?”

“너는 너지.”

“노든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할 수 있게 나한테도 이름이 있으면 좋겟어요.”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함, 기질과 성향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찾는 거. 제대로 아는 거.

그것이 ‘나’이고 ‘우리’인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사막은 황량해 보이고, 그 위를 걷는 나와 노든은 가망이 없는 두 개의 점처럼 보일 것이다.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모래알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개미들과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빗물 고인 웅덩이 위에 걸터앉은 작은 벌레들 소리,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우리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 보아도.

가면의 밤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뛰어 나온 긴긴밤의 여정은 펭귄이 바다를 찾아 떠나고 바다를 만나 자신이 바다가 된다.

커다란 바위 같았던 노든과 불운의 기운을 깨뜨리고 끝내 자신의 바다를 찾아 혼자 우뚝 선 이름 없는 펭귄이야기.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불쑥 떠오른다.

밤에 곤히 자다가 꿈 속에서 책을 만나기도, 독서를 하다 꿈을 만나기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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