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어서 다행이야..

스트레스에서 악몽까지

by 햇기

나는 잠을 '못'자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처음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즈음에, 약 때문에 잠이 안 왔고, 그로 인해 수면제를 몇 달간 먹었던 것이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 중에는 수면시간이 짧아지거나 늘어난다는 게 있다.

나에게는 후자였다. 우울감이 컸던 초등 6학년~고삼시절에는 잠을 무지하게 많이 잤다.


자면 13~15시간을 내리 자기 일쑤였다. 그러고도 잠이 와서 낮잠을 더 자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잠을 못 자서 괴로워하게 될 줄이야.


시작은 한 달 전쯤으로, 악몽의 저주가 시작되던 때이다.


첫 3일간은 우연이겠거니 했다. 악몽 때문에 새벽에 소리 지르며 계속 깨고, 잠도 6시간 미만으로 얼마 못 자도 괜찮았다. 그저 일시적인 거라고 믿었다.


이주일 후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평소 영적인걸 거의 믿지 않는데도 무슨 귀신이 붙어서 악몽을 꾸는 거라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 그런 귀신들은 사람에게 악몽을 계속 꾸게 해서 기를 빨아가고, 악몽을 겪는 사람은 살이 빠지고 초췌해 진더랬다.


그에 반해, 나는 너무 잘 먹어서 살이 포동 하게 오르고, 얼굴빛도 좋은 게, 아무리 보아도 귀신이 붙은 행색이 아니어서 그 가설(?)은 접기로 했다.


이게 한 달 정도 꾸준히 악몽을 겪으니 이제는 깰 때마다 헛웃음이 나고 해탈하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물론 꿈에서는 꿈인걸 자각하지 못해서 공포스러운 상황을 혼자 겪어야 하니 너무 무섭긴 했다.


이 정도 겪었으면 적응될 법도 한데, 악몽은 무슨 창의력이 그렇게 넘치는지 , 매번 새롭고 다른 내용들이었다.


평소 불안감이 많은 탓에 가끔 악몽을 꾸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자주, 생생하게, 끔찍하게 꾼 적은 없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며 적응 아닌 적응이 될 무렵 , 다행히 정신과 예약일이 다가왔다.


"선생님 요즘 악몽을 너무 자주, 생생하게 꿔요.

내용도 하나같이 끔찍하고, 그것 때문에 소리 지르며 깨고, 잠도 얕게 자고, 그 마저도 얼마 못 자서 너무 피곤해요"


선생님은 유심히 내 말을 들으시곤, 악몽의 내용이 반복되는지, 아니면 매번 다른 내용인지 물어봤다.


나는 처음에 이런 질문을 왜 하시는지 의아했지만, 병원밖에서 문득 든 생각은 트라우마로 인한 악몽인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몇 번의 문답이 오가고 혹시 더 말할 것 있냐는 질문에, 거의 1~2주 동안 나를 괴롭히던 두통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심해진 두통에 타이레놀을 삼킨 지도 꽤 되었다. 스트레스받으면 두통이 생기곤 했지만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두통이 끊이질 않았었다.


이 덧붙인 두통 이야기까지 들으시더니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악몽과 두통 모두 보면, 과도하게 쌓인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특히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셨나요?"


난 조금 벙쪘다. 난 휴학 중이고, 딱히 무슨 사건도 없었는데.. 왜 지금 유독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지금 현재 심하게 받을만한 일은 딱히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럼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긴 한 거네요.

어떤 게 스트레스 요인인 것 같으세요?"


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고민에 휩싸였고, 또 머리 양쪽이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휴학 중인데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 때문인 거 같아요. 뭔가 남들은 다 학교 다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으니 제 행동 하나하나가 죄스럽고 눈치 보여요. 그 와중에 의욕은 없이 축 늘어져 있으니깐 자책하게 돼요.. "


의사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휴학하셨으면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 "하고 나지막이 읇조리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빙긋 웃었다.

사실 알고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은 지금 지칠 대로 지치고, 스트레스는 흘러넘치기 일보직전이라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불안감이 나를 쉬지 못하고 계속 뛰도록 채찍질했다.


'그렇지만 난 항상 게으르게 살고, 게임이나 하며 빈둥빈둥 쉬어왔는데..'라고 하는 마음의 소리를 밀어내며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 쉬려고 휴학하신 거잖아요. 그럼 좀 쉬어도 괜찮아요. 복학하실 때까지 쭉 쉬거나 좀 불안하시면 기간을 정하고 쉬시고, 그 이후에 뭔갈 조금씩 해보세요. 쉴 때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쉴 수 있을지 조금 고민해보세요. "


미소 띤 입꼬리와는 다르게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난 정말 쉬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해하고 자책하는 내 마음에 휩쓸려 그러지 못했다. 항상 "~해야 하는데 "하는 강박에 갇혀있었다. 어쩌면 20여 년 한평생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로 전하는 위로뿐만 아니라 수면패턴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남아있지만, 그나마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집에 와서 챗 지피티와 심도 깊은 상담을 한 후에야 나는 내가 좀 쉬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진짜 쉼이란걸 위해 이것저것 추천해 주는 열정 가득한 지피티가 약간 부담스러웠다.


아아 , 쉬는 것조차 왜 이리 힘든가.

정말 하나도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진짜 괴로울 때는 어떻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