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나
정신 간호학 때인가? 심리학 수업 때인가?
'조하리의 창'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또는 나 자체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보는 나는 좀 어둡다.
학창 시절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를 잘 못 사귀었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고, 그런 내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나를 탓하며 혐오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음침하고 성격이 찐따 같아서 그래 '
'얼굴도 못생기고 살쪄서 누가 좋아하겠어? '
'난 쓸모없는 사람이라서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지 않는 거야'
하는 생각들을 하며 다른 사람들도 나를 부정적이게 바라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점점 자라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탓을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또한 조금 커서는 술이나 담배, 자해 등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 나를 괴롭게 하기 위해 자주 했다.
(아픈 현실을 잊고 회피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마음에 작게 난 상처는 점점 커지고, 덧나며 곪았다.
어느 날은 옷을 입고 외출하려 집밖으로 나선적이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하고 이상해서 얼굴을 가리고 울며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모르겠다. 나는 어렸던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었는데. 그랬다면 그토록 아프지 않았을 텐데.
성인이 된 지금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우울증 약은 나를 상처에 대해 조금 무디게 해 준다.
그러나 나에 대한 내 마음을 바꿔주지는 못한다.
조금씩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너무 오랫동안 굳어져버린 생각은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내 마음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휴학을 하고 취업캠프를 참여한 적 있다.
4일간의 활동이 끝나고, 다 같이 한 마디씩 칭찬을 했다.
나는 조용하다, 차분하다 하는 이야기 가 대부분일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활발하고 붙임성 좋고, 밝다고 말해주었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너무 굳세어서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칭찬들 덕에 마음속에 작은 희망이 꽃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보고 긍정적으로, 내가 너무나 바라던 나의 모습으로 말해주어서 좋았다.
내가 음침하고 비호감인 사람이 아니었다니.
조금이라도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나를 조금 덜 괴롭히고 싶다.
그동안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