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자기소멸
나는 배려하는 사람이다.
회의 자리에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조직 안의 역할 분담에서도
나는 늘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상대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내 말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한 박자 쉬고, 하고 싶은 표현도 조심스럽게 골라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억울한 역할을 맡게 되는 걸까?
나는 왜 늘 당연한 사람, 예상 가능한 사람, 조용한 사람으로만 남게 되는 걸까?
조직 안에서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 '배려심 있다', '진심이 느껴진다'고 평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위험하고, 해결하기 어렵고, 긴급한 현안이 많은 자리는 자주 내 몫이 되곤 했다.
반면, 권한이 있고 생색내기도 좋은 자리들은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나는 남을 배려하느라 나를 너무 많이 지우고 있었구나.
사람들이 내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투명하게 만든 거였다.
배려는 아름다운 덕목이다.
하지만 과한 배려는 자기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상대의 기분’을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내 감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배려하는 사람들은 종종 “괜찮아요”, “저는 신경 안 써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그 말들은 종종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신호로 잘못 읽힌다.
요즘 나는 연습 중이다.
말을 아끼기보다 말을 고르고,
상대의 기분만 살피기보다 내 감정도 꺼내보는 연습.
배려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조용한 사람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나를 표현해나가면
언젠가는 배려가 곧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