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이 있다.
얼마전 이사 준비를 하면서 나의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오랜친구는 혼자 이사를 하는 내가 걱정스러워 직접 달려와 함께 짐을 정리해 주고
거리가 멀리있는 친구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며 매일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주고
이사하느라 고생했다고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는 멋진 선생님도 계시고,
또, 누군가는 내가 지치지 않게 일상적인 안부로 나의 마음을 살펴준다.
누군가의 쓸데없는 얘기 하나가, 복잡한 내 마음에 스위치처럼 작동할 때.
딱히 힘들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좀 괜찮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관계.
요즘 내게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진지한 조언을 하지도 않고, 내 상황을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길 가다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지나가다 들은 유치한 대화 같은 것들이다.
궁금하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런데도 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어디 아프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묻는 대신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내 표정을 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지만, 덕분에 문제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진 않게 되었다.
그건 분명, 꽤 큰 도움이다.
살다 보면, 관계란 꼭 깊고 무거워야 의미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알게 되었다.
가벼운 농담 몇 마디로 하루의 공기를 바꿔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얼마 전 이 사람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
그 사람이 내게 주는 건 ‘해결’이 아니라 ‘환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줄의 농담일 수도 있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벼움이 나의 마음 구석구석을 통과하며
답답했던 가슴속이 조금씩 환해지고,
마음의 숨이 트이듯 통풍이 되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
바로 그 환기가, 때로는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게 한다.
무거운 마음을 잠깐 내려놓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삶에 꼭 필요한 작은 숨구멍 하나를 갖게 된 것과 같다.
그 사람은 나를 분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나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요즘 나는, 그것만으로도 꽤 지켜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