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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r 19. 2020

우리는 신종코로나에 준비됐던 게 아닐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실 많은 사람이 원하던 거였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는 아니지만, SK 와이번스의 제이미 로맥이 캐나다 언론과 한 인터뷰는 흥미로웠다. 본국인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캐나다보다 한국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며 자신이 본 한국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질서 정연한 성격이 있는 곳에서는 이런 바이러스를 억제하기가 훨씬 쉽다. 여기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나는 장을 보러 갈 수 있고, 화장지를 살 수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인이 정부의 권고대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 같다.


잠정 폐쇄를 앞두고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에 몰려든 미국인들, 셧다운을 앞두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길거리로 쏟아진 프랑스인들을 보면 지금 우리는 질서의 민족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정부와 헌신적인 공무원들, 앞다투어 달려간 의사와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처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에서 ‘서울 불바다’ 같은 발언이 나오면 남한에서도 사재기가 일어나곤 했었다. 공포는 쉽게 적응되는 게 아니다. 두려움은 초조한 행동을 낳고, 인간의 밑바닥을 내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정부는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으려 애썼지만, 동시에 경계심 이상의 공포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관리한 셈이다. 해외 언론들이 찬사를 보내는 ‘민주주의적 관리’의 결과다. 정보를 감추고, 사람들을 통제하면 불안감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유럽과 미국의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사재기 행렬에서 볼 수 있다.


그런 한편, 어쩌면 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게 아닐까 싶다. “국난극복이 한국 사람의 취미”라는 짠한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교인들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후, 대구로 달려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약 1년 전 산불로 뒤덮인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던 전국의 소방차량을 연상할 수 있다. 대구로 모여든 각종 성금과 물품들에서도 역시 1년 전 그때 강원도 고성과 6년 전 그때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이어진 각종 기부 행렬을 떠올릴 것이다. ( 워낙 국난이 많아서 전 국민적인 기부의 기억도 많다.) 또 따뜻한 날씨에는 어김없이 미세먼지와 함께 하는 이 나라에서는 이미 ‘마스크’가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쓰이고 있었다. ‘마스크’를 ‘은폐’의 개념을 보기 때문에 지금도 마스크 착용을 꺼리는 유럽, 북미와 비교해보면, 우리가 마스크에 적응한 민족이라는 사실은 정말 다행스럽다. 그러니 제이미 로맥 선수가 바라본 현재 한국의 모습은 노력하는 정부와 준비되어 있던 국민이 만든 풍경일 것이다.


물론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불편한 건 많이 있다. 마음껏 원하는 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제일 불편하고, 마스크 때문에 김이 서리는 안경이 불편하다. 코로나 19 사태가 끝나면 해방될 불편이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불편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이 원하던 거였다. 회사에서는 불필요한 회식을 싫어했고, 집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거리에서는 남들의 관심을 원치 않았다. 트위터 상에서도 코로나 19 사태가 끝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국 사회의 표준으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사실 지난 3월 15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친척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을 거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단둘이 식사를 하는 걸로 끝냈다.(뭔가 아쉬웠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잿밥과 국 한 그릇만 올려놓으셨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편했다.


*2020년 3월 19일. 허프포스트코리아에 올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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