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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Nov 29. 2020

38,300원의 부의금

[장례식 기행] 부의금 봉투에서 발견한 뜻밖의 숫자

장례식장의 부의금 정산은 결혼식장의 축의금 정산과 방식이 조금 다르다. 결혼식장에서는 축의금을 받아, 봉투를 열어보고 금액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축의금을 낸 사람의 이름과 그가 낸 액수를 명부에 적는다. 이후 명부에 적힌 액수의 총합과 실제 봉투에서 빼낸 돈의 총합을 맞춰서 정산한다. 그래서 이 숫자를 맞추는 게 꽤 까다로운 일이다. 사촌동생의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을 접수받고 정산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도 약 15만 원이 빠지길래 난감했던 적이 있다. 나는 괜히 친척들이 나를 의심할까 싶어서 계산을 하고 또 했는데도, 빠진 돈이 나타나지 않아서 찜찜한 기분으로 정산을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의 부의금 정산에는 그런 일이 없다. 문상을 온 사람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은 있어도, 그들이 부의금 봉투에 얼마나 넣었는 지를 처음부터 적어 놓은 명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맞춰야 할 숫자가 없다는 것이다. 부의금 봉투에 적힌 이름과 봉투에 담긴 돈의 액수를 확인해 기록하고, 더 하면 끝이다.


장례식장에서 부의금을 정산해 본 경험은 딱 한 번 있다. 결혼식장의 축의금이나, 장례식장의 부의금이나 주로 가까운 친척들이 정리를 해주는 편이다. 내 아버지의 장례식 때는 내가 상주였기 때문에 다른 친척들이 해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례식 때도 사실상 상주나 다름없는 ‘장손’이어서 내가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친구 L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 부의금을 정산했었다.  


 나는 L과 L의 사촌형님과 함께 부의금을 정산했다. L의 형님은 역시 숙달되어 보였다. L이 봉투에 적힌 이름과 액수를 불러주면, 형님은 하얀 종이 위에 이름과 액수를 적었다. 현금의 액수를 적을 때, ‘0’의 개수를 어떻게 적는 지만 봐도 ‘짬’이 보인다. ‘000’ 단위로 끊어 적을 것, 0과 0은 유려한 필체로 이어적을 것. 그 형님은 그렇게 적고 계셨다. 그 와중에 나는 저 액수를 나중에 더할 때 어떻게 하려고 하나 걱정스러웠다. 일일이 계산기로 찍으면 분명 헷갈릴 텐데.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엑셀을 실행시켰다. 형님이 적은 이름과 숫자를 그대로 엑셀에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모든 기록이 끝난 후, 내가 엑셀에서 더한 총액과 형님이 일일이 계산기로 찍어 나온 결과가 똑같이 나왔을 때, 정산이 끝났다. 


이름과 숫자를 기록할 때, 흥미로운 숫자가 보였다. 38,300. 300원? 3만 8천300원이라고? 부의금 봉투에 3만 8천300원을 넣었단 말이야? 나는 L에게 다시 확인하고, 형님에게 다시 확인했다. 해당 봉투에는 정확히 1만 원짜리 3장과 5천 원짜리 1장, 1천 원짜리 3장.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 3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부의금의 액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3만 원을 내도 되지 않았을까? 그게 아쉽다면 3만 5천 원만 내도 되지 않았을까? 그분은 왜 굳이 1천 원짜리 3장과 동전 3개를 봉투에 넣었을까? L은 그 봉투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온 분이 자신도 잘 모르는 아버지의 친구분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혼자 장례식장을 찾아와 상주에게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후,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장례식장을 떠났다고 한다. 


다른 이름과 숫자를 엑셀에 기입하면서도 나는 ’ 38300’이란 숫자를 계속 생각했다. 뭔가 낭만적인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 38300’은 조문객과 고인 사이에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닐까? 이를테면 3월 8일이란 날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300은? 그건 혹시 ‘3:00’ 이란 시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년도를 알 수 없는 어느 3월 8일 오후 3시. 두 사람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나는 친구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놓고 상상하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드라마를 떠올렸다. 그때 L의 형님이 말했다. “이런 분이 진짜 귀한 손님인 거야. 오죽했으면…” 


형님의 말은 아마도 그분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부의금을 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는 궁금했다. 굳이 왜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었던 걸까? 그만큼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라도 고인을 추모하고 싶었던 걸까? 3만 원만 내도 되고, 아니면 그냥 내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동전까지 넣었다는 건 그만큼의 마음이 있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그 마음의 정체가 궁금했다. 나였다면 나와 각별한 사람의 장례식장이라고 해도, 또 나에게 가진 돈이 얼마 없다고 해도 굳이 8천300원을 더 넣지 않았을 거다. 8천 원은 넣었어도 300원은 정말 넣지 않았을 것이다.  동전 3개가 함께 들어간 나의 부의금 봉투가, 그 봉투를 넣은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전 3개를 더 넣었다는 건, 자신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것까지 감수했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라면, 그 조문객은 말 그대로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고인의 부고를 듣자마자 다급히 장례식장을 찾은 게 아닐까? 미처 부의금 봉투를 준비하지 못한 그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따로 현금을 찾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그대로 쏟아낸 게 아니었을까? 


‘38300’이란 숫자는 그처럼 낭만적이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필 그 숫자가 나타난 곳이 장례식장이어서 그랬을 거다. 그러고 보면 장례식장의 부의금 정산 방식은 그런 마음까지 받아들이기에 매우 적합한 것 같다. 봉투를 받자마자 열어보고 이름과 액수를 적는 결혼식장에서는 그런 마음을 가진 하객도 같은 숫자의 봉투를 내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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