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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Nov 18. 2021

놀러 가서 찍은 영정사진

누군가는 영정사진에서 영감을 받는다.

예전 직장 선배의 부친상에 다녀왔다.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조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고인에게 예를 표한 후 유족들과 인사했고,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나눈 대화도 장례식이면 의례 나오는 주제의 이야기였다. 고인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었고, 고인의 병간호를 위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위로했다. 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서로 다니고 있는 직장의 분위기가 화제에 올랐고,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자리를 떴다. 혼자 간 터라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지만, 코로나19 시국이라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인의 부친상에 대한 예를 표한 것으로 지나갔을 장례식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선배의 부친상은 나에게도 특별한 장례식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주변을 정리한 선배는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배의 이름이 뜬 순간, 의례적으로 조문객에게 보내는 감사인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용은 의례적이지 않았다. 


“예전에 병진 씨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나도 우리 아버지가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영정으로 썼어. 그때 엄청 인상 깊었거든. 낚시를 하시던 모습이었나? 뒤돌아서 활짝 웃으셨던 거 같은데… 뭔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 같고, 행복하게 떠나셨을 거 같았어. 고마워.” 


선배의 문자를 받고, 잠시 기억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떠올랐다. 강원도의 어느 계곡에서 어머니가 찍은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몸을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고,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듯 표정을 짓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는 그 사진을 골라 사진관에 가져갔다. 산과 물이 함께 있던 풍경에서 아버지 얼굴과 손만 클로즈업되어 영정사진이 제작됐다. 

어머니의 작품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많은 조문객의 영정사진에 대해 물었다. 다들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흔히 영정사진으로 쓰는 오래된 증명사진이 아니라, 놀라가서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사진 속 아버지가 엷은 미소와 함께 손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영정에서 보여 그랬을 것이다. 장례식 내내 나는 “어머니 작품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돌아본 영정사진 속 아버지는 2가지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미소와 인사는 “어, 왔어? 오랜만이야.”라고 말하는 듯했고, 동시에  “나 이만 갈게. 잘 지내”라고 작별하는 듯 보였다. 슬픔을 안고 온 조문객들도 아버지의 모습에서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선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배의 메시지를 받은 후, 영정사진이 주는 영감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가 고른 그 사진은 원래 가족의 추억을 담은 채 앨범 속에 있었다. 그것이 장례식장에 놓이면서 영감의 대상이자, 작은 이벤트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사진을 보고 자신의 가족 또한 밝은 모습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영정사진을 갖고 싶어졌다. 운이 좋게도 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내 장례식에 놓일 내 영정사진부터 골라야 할 거다. 그게 아니면 웨딩촬영처럼 ‘퓨너럴 촬영’을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모르는 게 현실이니 평소 자주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들은 가족, 지인과 공유하는 게 좋겠다. 내 영정사진의 메시지는  “어쩌다 보니 먼저 갑니다”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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