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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Nov 21. 2020

그는 컴퓨터 때문에 죽지 않았다

[장례식 기행] 세상이 '철없는 자살'이라고 했던 죽음

“영석이가 죽었대.”


고3이었던 1996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영석(가명)이의 반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우리 반에까지 퍼졌다. 영석이와 나는 고2 때 같은 반이었다. 그리 친했던 건 아니다. 언젠가 등굣길에 만난 영석이가 자신이 듣던 이어폰 한쪽을 건네줘 함께 음악을 들었던 것이 그와 나눈 기억의 전부였다. 그 영석이가 죽었다고 했다. 소식을 맨 처음 알린 건, 영석이 반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우리 반에 영석이라고 있지? 걔가 죽었단다.”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영석이와 친했던 건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조문을 가기로 했다. 미아리의 어느 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영석이 집안의 종교적인 방식이었을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관을 닫기 전에 도착했던 걸까? 나는 그날 관 속에서 평화롭게 잠든 영석이의 얼굴을 보았다. 영석이의 아버지가 우리를 맞이하셨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의금을 낼 돈도 없었다. 육개장을 먹지도 않았다. 다만, 그때 보았던 영석이 가족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다. 영석이 아버지와 영석이 어머니, 그리고 영석이의 여동생. 그리고 눈을 감은 영석이의 얼굴. 


영석이에 대한 기억은 고3 시절 내내 우리의 주변을 떠돌았다. 영석이의 죽음을 보도한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영석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언론은 ‘컴퓨터’ 때문이라고 했다. 가난한 부모가 컴퓨터를 사주지 않아서 영석이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영석이의 일기장을 거론했다. 그의 일기장에 ‘컴퓨터가 갖고 싶다’란 내용이 쓰여있었다는 거다. 나와 친구들은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영석이가 컴퓨터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고? 누구나 컴퓨터를 쓰는 시대였지만, 아직 어느 집에나 컴퓨터가 한 대씩은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컴퓨터가 있다고 해서 컴퓨터에 빠져 살던 시대도 아니었다.  나와 친구들은 학생 답지 않게 술을 마시러 다니기는 했어도 게임을 하러 다니지도 않았다. 아직 PC방도 없던 때였다. 그런데 영석이는 정말 컴퓨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비관하며 죽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잠시 그때의 의문을 잊었다. 그런데 영석이가 죽고 난 지 몇 달 후 치른 수능 모의고사에서 우리는 또다시 영석이를 떠올렸다. 1교시 언어영역. 듣기 평가 시간. 성우들이 읽은 지문은 컴퓨터에 열광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였다. “최근 부모가 컴퓨터를 사주지 않아 자살한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처럼...”이라고 여자 성우가 운을 뗐다. 지문을 듣던 우리는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시험을 계속 치렀다.  우리는 다시 영석이를 잊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영석이는 정말 ‘컴퓨터’를 죽고 싶을 만큼 갖고 싶었던 걸까? 


2020년인 지금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당시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때 읽었던 것처럼 하나같이 영석이에 대한 기사에는 ‘컴퓨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다음은 [“컴퓨터가 뭐길래..." "친구와 말 안 통한다" 고3 컴맹 비관 자살]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동아일보>의 기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컴퓨터를 사지 못한 고등학생이 친구들이 컴퓨터 이야기만 해 말이 안 통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2일 오전 6시경 서울 00구 00동 0모씨 집 현관에서 0씨의 외아들이 처마 끝에 전선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 0모씨가 발견했다. 0군은 자신의 방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3분의 2가 컴퓨터 얘긴데 나는 하나도 모른다.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완전한 촌놈으로 취급해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


이번에는 <경향신문>의 기사를 보자. 


“…. 0군은 일기장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3분의 2가 컴퓨터 얘긴데 나는 하나도 모른다. 우리 반에서 나는 완전히 촌놈이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또 "어린 우리를 놔두고 아빠와 엄마는 서울에서 일을 했다. 아빠 엄마 곁에서 컸으면 남들처럼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게 많고 공부도 잘했을 텐데"라고 적혀 있었다.”


<동아일보>의 기사에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란 내용이 인용되어 있지만, <경향신문>의 기사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다. <동아일보>는 영석이가 적은 게 ‘유서’라고 보도했지만, <경향신문>은 ‘일기장’이라고 전한다. 다시 말해 <동아일보>의 기사 속 영석이의 문장은 진짜 유언인데, <경향신문> 속  그의 문장은 자살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어떤 메모에 가깝다. 여러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당시 경찰서를 출입하던 <동아일보>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가 각각 다른 브리핑을 받았거나, 혹은 사건 내용을 알려준 경찰이 부모에게, 혹은 직접 사건을 담당한 다른 경찰에게 듣고는 대충 “이렇게 적혀있었다더라”라고 이야기했거나. 


나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동아일보>의 저 문장이 기자의 손에서 쓰였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부주의가 아니라면, 일부러 그렇게 썼을 것이다. 어느 고등학생의 자살, 그리고 그의 노트에 적혀있던 ‘컴퓨터를 갖고 싶다’란 문장을 연결시키면, 그냥 자살사건이 아니라 컴퓨터를 둘러싼 사회적 병폐를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정말 컴퓨터를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어 비관했고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동아일보>의 기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경향신문>도 실제 사실을 보도한 건 아닌 것 같다. 이 기사의 제목은  [고3생 철없는 자살 친구들 "컴맹" 놀림에 목매]이다.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가지고 영석이가 ‘컴퓨터’ 때문에 죽었다고 추정한 제목이다.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아쉬움과 바람과 절망, 고민 등을 쓴다. 1996년 그때 내가 일기를 썼다면, 나는 오르지 않는 성적에 대해 비관하는 내용을 적었을 것이다. 2020년 지금의 내가 일기를 쓴다면 대출에 대한 걱정을 적었을 것이다. 1996년에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그 이유는 ‘성적비관’이다. 지금이라면 언론사들은 ‘경제적 빈곤’이라고 적을 것이다. 과연 정말? 죽은 이가 남긴 몇 줄의 글을 가지고 그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를 확정할 수 있을까? 나는 영석이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비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부모, 그래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 주위의 친구들과 비교할 때 더 비관적인 자신의 현재. 영석이가 가지고 싶은 건 컴퓨터 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음악을 좋아했던 영석이는 더 좋은 워크맨도 가지고 싶었을 거다. 그때의 나처럼 더 좋은 신발과 더 멋진 옷도 갖고 싶었을 거다. 컴퓨터를 갖지 못하는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도 ‘컴퓨터’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르는데 세상은 그의 죽음을 ‘철없는 자살’로 매도해 버렸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죽음에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도 되는 건 아니다. 다시 영석이의 명복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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