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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19. 2018

시신을 매장하는 일은 어떻게 진행될까?

[장례식 기행] 할머니를 할아버지 곁에 모셔다 드렸던 날의 기록

할머니는 2012년 8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998년 8월의 나는 스무살이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충북 청원군에 있는 선산에 모셨다. 그때의 나는 시신을 매장하는 상황에 대해 별 다른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14년 후 할머니를 할아버지 곁에 모실 때는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아버지를 현충원 납골당에 모셨던 나는 어머니 또한 그곳에 모시게 될 거다. 매장문화는 점점 사라질테고,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매장문화를 그리워 할 필요는 없지만 기록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당시 정리했던 글과 사진이다. 여기에 옮겨놓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98년 8월에 돌아가신 후, 14년 만에 남편의 곁으로 가신 거다. 해외출장 중 소식을 들은 터라, 발인 전날에 간신히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할아버지와의 합장을 위해 선산으로 향했다. 날은 더웠고, 벌레들도 많았고, 몸은 피곤했다. 그 와중에도 놀라웠던 건, 그냥 땅을 파서 관을 넣으면 되는 줄 알았던 매장이 사실은 매우 디테일한 절차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집안어른들과 인부들은 종종 의견의 불일치를 빚었다. 워낙 디테일하다보니 지역마다, 집안마다, 사람마다 해오던 방식이 다른 탓일 거다. 솔직히 매장문화는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분의 합장을 지켜본 후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지켜 본 이 과정을 정리해 놓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할아버지가 계셨던 곳 바로 아래에 두 분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집안 어른들과 인부들 간의 대화를 들어보니, 땅을 팔때도 그냥 깊이 파는 게 아니었다. 일단 '오색토'가 나올 때까지 포크레인이 땅을 팠다. 그렇게 나온 흙에 석회가루를 섞었다. 섞은 흙을 가지고 다시 땅을 다졌다. 탄탄해진 땅을 다시 파고 '내관'을 만들었다. 준비된 관을 그대로 넣기도 하겠지만, 수의가 입혀진 시신만 꺼내 넣기도 한다. 내관은 이때 필요한 공간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길죽한 공간이 내관이다. 여기에도 시신을 그냥 모시는 건 아니다.

먼저 창호지를 바닥에 깐다.

그 위에 시신을 모신다. 등 부분에 칠성판을 대고 그 아래에 줄을 댄 후, 6명이 한 줄씩 잡고 조심히 시신을 모셨다. 할아버지를 먼저 모셨다.

원래 깔려있던 창호지로 시신을 덮는다. 내관에 남아있는 공간에 흙을 채운다. 이때 어떤 인부 아저씨가 디테일 하나를 추가했다. 합장을 할때는 보통 아내가 남편보다 조금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아내가 남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거다. 남편의 품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을 연출하려 한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모가 "우리 집안은 남녀평등"이라고 대답했다.

그위에 횡대를 깐다.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 판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디테일이 들어가는데...

시신의 가슴 부분에 있는 횡대를 다시 빼고는 그 안에 청실홍실을 넣는다.

청실홍실을 넣은 부분에 다시 횡대를 깐 후, 그 위에 명정을 덮었다. 이제 유가족들이 몇 삽의 흙을 뿌리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인부들의 일이다. 원래는 그렇게 하는 모양인데, 우리 가족은 여기에 한 가지 디테일을 더 추가했다.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 그래서 시신을 모실 때 덮었던 태극기가 있었다. 14년간 흙과 비에 젖어 있던 태극기는 누더기가 됐다. 그걸 말려서 두 분께 덮어드리려고 했던 것 같은 데, 엄마가 장례지도사님께 새 태극기를 덮어드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례지도사 아저씨는 한 숨을 푹 쉬셨다. 아저씨의 차는 산 아래에 있었는 데, 하필 그 안에 새 태극기 한 장이 있었고 이 아저씨는 또 그걸 기억했고, 또 차마 지금 태극기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을 못한 것이다. 아저씨는 먼 길을 내려가 태극기를 가져오셨다. 두 분께 새 이불을 덮어드리듯 태극기를 얹은 후에, 흙을 채웠다. 14년 간 떨어져 지내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게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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