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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민족DNA:도전과 응전

제1장 민족 DNA의 탄생과 분화

by 한시을

4화: 고구려-백제-신라, 홍익인간 민족 DNA의 초기 발현


▌"世世爲願如兄如弟" (세대를 이어 형처럼 아우처럼 지내기를 바란다) - 충주고구려비, 광개토대왕 19년(409)


4세기 말, 동북아시아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5호 16국 시대로 한족과 이민족들이 끝없이 싸웠고,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패권을 놓고 경쟁했으며, 일본에서는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진출을 꿈꾸고 있었죠.


그런데 이 혼돈 속에서 한 인물이 등장해 동북아 전체 판도를 바꿔놓았습니다. 고구려 19대 왕 광개토대왕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정복을 완료한 후 한 일이었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정복자도 하지 않았던, 그래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을 해낸 거예요.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 정신의 첫 번째 실제 구현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혁명적 정복관


먼저 광개토대왕이 얼마나 강력한 정복자였는지부터 볼까요.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된 그의 업적은 정말 압도적이에요.


"왕이 영락 5년(395)에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니, 58성 700촌을 빼앗았다. 영락 8년(398)에는 숙신을 토벌하고, 영락 9년(399)에는 백제가 왜와 화통하여 신라를 침입하므로 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


한마디로 사방팔방을 다 이긴 거죠. 백제를 굴복시키고, 신라를 구원하고, 중국 동북부의 여러 민족들을 복속시켰어요. 그의 영토는 지금의 한반도 전체와 중국 동북부, 연해주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른 정복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역사상 강력한 정복자는 많았거든요.


진짜 특별한 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형여제": 세계사 최초의 혁명적 선언


충주에 있는 고구려비를 보세요.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 19년(409)에 세워진 것으로, 그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후 남긴 기념비입니다.


여기에 새겨진 여덟 글자가 세계사를 바꿨어요.


"世世爲願如兄如弟"


한자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世世(세세): 대대로, 영원히

爲願(위원): 바라고 원한다

如兄如弟(여형여제): 형과 같이, 아우와 같이


즉, "대대로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란다"는 뜻이에요.


잠깐,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해보죠. 누구와 누가 형제처럼 지내자는 걸까요?


정복자인 고구려와 피정복민들이 형제처럼 지내자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혁명적인 발상인지 아시겠어요? 고대 세계에서 정복은 지배와 착취를 의미했어요. 로마가 갈리아를 정복했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그들이 피정복민과 "형제가 되자"라고 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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