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들, 특히 꾸준히 글을 올리는 이들은 공통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은 전혀 부끄럽거나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순전히 자기 성찰만을 위해 끝없이 써 내려가는 이는 극히 드물다. 지혜를 얻고 그것을 글로 남겼음에도 아무와도 나누지 않고 사라진다면, 그것은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선조들이 얻은 지식과 통찰을 기록하고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눔은 선의 행위이다. 돈이나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노동·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것 또한 선한 일이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글에는 많은 정신적 노동이 담겨 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은 동일하게 인간의 수고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을 대가 없이 나누는 행위는 고귀하다. 훌륭한 설교자가 탄생하려면 청중이 필요하듯, 좋은 작가와 좋은 글이 존재하려면 독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관종적 욕망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와 나눔을 향한 자연스러운 동기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 동기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독자의 인정이나 명성, 출간과 같은 외적 보상은 부차적이다. 글쓰기를 통해 더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나 자신의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덕에 따르는 활동”이라 했다. 선한 행위 속에 이미 행복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외부의 보상이 필요 없는 덕의 행위다.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 보상이며, 곧 행복이다.
물론 글쓰기는 쉽지 않다. 고통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은 때로 산고와 같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성취와 기쁨을 느낀다. 암벽등반이나 마라톤 같은 고된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도,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순간에 더 큰 만족과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사고와 성찰을 통해 얻은 생각을 글로 남길 때, 그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깊은 의미의 행복이다.
스피노자도 『에티카』에서 덕과 행복은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선한 삶을 사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의 기쁨과 자유를 낳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바로 그 선한 삶의 행위다. 글을 쓰며 얻는 몰입과 자기 일치의 경험은 뇌의 도파민 분비 같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실존적 확신을 주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이 확신을 확인한다. 신은 인간이 삶 속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주어진 조건이 어떠하든, 신앙인은 의미와 기쁨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는 내가 받은 이성과 사유를 다해 삶을 성찰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행위이기에 신 앞에 드리는 나의 작은 사명이라 믿는다.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행복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착하고 충성된 삶의 증거일 것이다.
결국 내가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유명세나 부가 아니라, 삶의 근원적 행복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윤리적·정신적·영적 성장을 가져오고,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을 준다. 외부의 인정이나 물질적 성취는 덤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글쓰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삼아 지속할 것이며, 그 속에서 행복과 성장을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 글을 통해 확인한 소중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