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가 전한, 얼음 속 경고
날개 달린 신발로 소식을 전하던 헤르메스. 그의 로마식 이름을 딴 원소가 있다. 바로 수은(Mercury, Hg)이다.
수은은 주기율표에서 유일하게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금속이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오래전부터 온도계, 거울, 의약품, 심지어 화장품으로 쓰였다. 그러나 그 매혹적인 광택 뒤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숨어 있다. 극미량만 몸속에 들어가도 신경계를 망가뜨려 떨림, 기억력 감퇴, 발달 장애를 일으킨다.
이 위험성은 역사 속 사건들로 각인되었다. 일본 미나마타만에서는 공장 폐수가 바다를 오염시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한 화학자는 실험 중 장갑 위에 떨어진 몇 방울의 유기수은 화합물에 목숨을 잃었다. 수은은 “아주 적은 양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대기 중 수은은 화산 분출과 같은 자연 현상에서도 나오지만, 오늘날 그 양을 폭발적으로 늘린 것은 단연 인간의 활동이다. 석탄 연소와 금 채굴이 그 주범이다. 석탄 속 미량의 수은은 굴뚝을 타고 대기로 흩어지고, 금을 추출할 때 쓰인 수은은 그대로 공기와 하천으로 방출된다.
이렇게 풀려난 수은은 기체 상태로 자유롭게 떠돌며, 바람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문명의 흔적 없는 순백의 극지까지, 보이지 않는 전령이 되어 도착하는 것이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헤르메스에 어울리는 금속이다.
극지의 긴 겨울 극야가 끝나고 해가 떠오르면, 생명의 빛은 역설적으로 수은에게는 덫이 된다.
태양 자외선은 바다 얼음 위의 소금기에서 비롯된 브롬을 깨워, 반응성 높은 물질로 공기 중에 내보낸다. 자유롭게 떠돌던 기체 수은(Hg(0))은 이 브롬의 기습을 받아 두 개의 전자를 잃고 산화 수은(Hg(II))으로 변한다.
그 순간, 하늘을 누비던 헤르메스가 신발의 두 날개를 잃은 것처럼,
수은은 더 이상 날 수 없는 전령이 되어 눈과 얼음 위로 떨어진다.
봄철 몇 주 사이, 대기 중 수은 농도가 거짓말처럼 급감하는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수은 고갈 현상(Mercury Depletion Event)’이라 부른다. 언뜻 보면 하늘이 정화된 듯하지만, 사실은 독성 물질이 얼음 위에 쌓여버린 결과다.
많은 물질들이 한 번 내려앉으면 빙하에 봉인되지만 수은은 그렇지 않다. 얼음 표면에 붙잡힌 산화 수은은 햇빛을 다시 받으면 기체 수은으로 되돌아가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수은이 내려앉는다.
대기와 얼음은 마치 시한폭탄을 주고받듯, 수은을 끊임없이 교환한다. 많은 몫은 다시 대기로 되돌아가지만, 일부는 해마다 쌓이는 눈 속에 묻혀 빙하의 일부로 남는다.
빙하에 남은 이 흔적은 대기와 얼음이 벌인 치열한 공방의 최종 기록이다.
비록 교환 끝에 일부만 빙하에 봉인되지만, 배출이 늘어난 만큼 빙하 속 수은도 함께 늘어났다.
산업혁명 이전 수천 년간 고요하던 기록은, 19세기 북미의 골드러시 시기에 첫 번째 점프를 보인다.
20세기, 석탄을 태운 공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그래프는 가파른 절벽을 그렸다.
많은 피해를 입은 뒤에야 우리는 2013년 채택된 ‘미나마타 협약’ 같은 국제적 노력을 시작했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완만히 줄어드는 조짐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 곳곳에서 수은을 지켜보고 있다.
눈 속에 남겨진 산화 수은은 여름이 되어 눈이 녹으면, 그 물과 함께 바다로 흘러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바닷속 미생물들은 무기 수은을 신경 독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메틸수은(MeHg)으로 바꾼다. 메틸수은은 물에 잘 녹고 생물 조직에 쉽게 스며들어, 먹이사슬을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농축된다.
플랑크톤에서 작은 물고기로, 다시 물개와 북극곰으로 이어지며 그 농도는 수백만 배까지 증폭된다. 이 위험한 연쇄의 최종 고리는, 그 동물을 전통적인 식단으로 삼는 북극의 원주민들과, 대형 어류를 식탁에 올리는 지구 반대편의 우리 자신이다. 결국 폭탄은 생명체의 몸속에서 터진다.
본래 헤르메스는 신들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었다. 이제 수은은 다시 한번 전령이 되어, 인간이 만든 오염의 소식을 우리 자신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 경고는 바다거북의 코를 막은 플라스틱 빨대처럼 즉각적인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수은의 비극은 가장 고요한 곳에서, 가장 투명한 생명의 조직 속에서 소리 없이 진행된다. 그래서 더 교활하고 무섭다.
그 소리 없는 경고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결국 우리의 식탁 위에 도착한다. 참치나 황새치처럼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대형 어류의 살점 속에 농축된 메틸수은은, 가장 안전해야 할 식사의 순간에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든 초밥 한 점이, 실은 지구적 순환이라는 거대한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순서일 수 있다.
먼 훗날, 누군가 이 시대의 빙하를 들여다본다면, 인류가 한 가지 원소를 두고 벌인 길고 험난한 시행착오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가 서서히 줄어드는 수은의 곡선 속에서, 한 시대가 유독성 물질을 어떻게 남용했고, 그 위험을 뒤늦게 깨달아 통제하려 애썼는지, 그 모든 과정의 흔적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