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잠든 미생물이 깨어날 때, 그것은 발견일까 경고일까?
빙하는 거대한 냉동고다. 눈송이가 쌓이고 다져지면서 얼음이 되고, 그 속에는 그 시절의 공기, 먼지, 심지어 살아 있는 작은 생명체까지 함께 갇힌다.
최근 극지연구소 연구진은 남극 빙하 속에서 수천 년 전 미생물을 확인했다. 그중 일부는 사람 세포에 부착할 수 있는 특징이나, 체온 수준에서 적혈구를 손상시킬 수 있는 성질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남극의 빙하 아래 호수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미생물이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발견했다.
빙하는 지구의 변화를 기록할 뿐 아니라, 오래된 생명을 보관해 온 냉동고였다.
그렇다면, 오래전 미생물을 간직한 얼음. 과연 먹어도 될까?
100여 년 전, 남극 탐험의 영웅시대가 있었다. 섀클턴, 아문센, 스콧 같은 탐험가들은 남극의 혹한을 뚫고 대륙을 건넜다. 그들이 갈증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건 단순했다. 눈을 녹여 물로 마시는 것.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미 ‘남극의 얼음을 마시는 실험’을 한 셈이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그들이 고생한 것은 추위, 영양 부족, 괴혈병 때문이었지, 물을 걱정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사실, 이 풍경은 지금도 이어진다. 현대의 연구원들도 기지를 떠나 빙하에서 캠핑할 때는 여전히 눈을 녹여 물을 만든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현장에서 목을 축이는 방식만큼은 영웅시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탐험가들과 현재의 연구자들이 마신 건 대부분 막 내린 눈이었다. 어제 내린 눈을 녹여 마신 것과 수천 년 전 얼음을 먹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남극의 스틱스(Styx) 빙하에서는 2천 년 전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미생물이 발견됐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미생물은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강이나 우물 속 미생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차이는, 조상들은 그들과 함께 살았다는 점이다. 매일 강물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면역 훈련을 했고, 몸은 그 상황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깨끗한 수돗물, 항생제, 백신 덕분에 훨씬 안전하게 살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낯선 미생물과 접촉하지 않으며 자랐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조상들이 버텼던 미생물을 우리가 더 힘들어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선천면역과 후천면역, 항체와 면역세포는 이미 완성된 시스템이었다.
달라진 건 환경이다. 조상들은 늘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되며 몸을 단련했다. 반면 우리는 백신과 위생 덕분에 안전해졌지만, 새로운 병원체를 만났을 때 대응 경험이 부족하다. 즉, 면역 자체가 진보한 게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늘어난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그 보호막이 과거에서 깨어난 낯선 미생물에게도 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조상들이 특정 병원체와 맞서며 얻은 면역 경험은 개인적으로는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강력한 감염병이 수많은 세대를 압박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유전자가 후손에게 이어진다. 흑사병이나 천연두 같은 질병이 유럽인의 유전자를 바꾼 사례가 그런 예다.
문제는 빙하 속에 갇힌 미생물이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그들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면역 기억’은 끊어진 상태다. 다시 만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빙하는 고립된 냉동고처럼 보이지만, 사실 끊임없이 바다로 녹아 흘러간다. 빙붕이 녹으면서, 그리고 빙하 밑에서 흘러나오는 담수는 오래된 미생물을 함께 바다로 보낸다. 그렇다면 바닷속 생물들은 이미 오랫동안 고대 미생물과 섞여 살아온 게 아닐까?
맞다. 하지만 바다는 워낙 크고 복잡하다. 미생물이 흘러들어도 순식간에 희석된다. 그리고 바다에는 이미 수많은 미생물이 경쟁하며 살고 있어, 새로운 손님이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위협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다. 고대 미생물은 바다 생태계에 새로운 유전자를 던져주고, 때로는 기존 미생물과 유전자를 섞으며 바다의 성격을 조금씩 바꿔놓을 수 있다. 바다는 거대한 도가니처럼 빙하가 흘려보낸 과거를 흡수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남극에는 ‘블루아이스’라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바람이 눈을 날려버려, 수십만 년 된 얼음이 표면에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연구자들은 깊이 시추하지 않아도 오래된 얼음을 채취할 수 있어 연구에 활용한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최근 남극장보고과학기지 근처에서 블루아이스 지역에서 35만 년 전 얼음을 찾아냈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그 얼음을 깨서 입에 넣는다면? 그건 단순히 얼음을 먹는 게 아니다. 수십만 년 전 과거와 직접 맞닿는 일이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강렬한 자외선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살아 있는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생명을 그대로 삼키는 셈이다.
블루아이스는 과학자에게는 귀중한 연구 현장이지만, 동시에 과거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유혹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빙하는 백만 년 이상 잠든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공기와 먼지, 미생물까지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채. 그리고 지금, 빠르게 녹아내리며 그 봉인을 풀고 있다.
과거의 생명이 깨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맞이할까? 수천 년을 건너온 낯선 손님은 인류의 잃어버린 면역 기억을 위협하는 ‘경고’일까, 아니면 현대 과학 난제를 풀어줄 ‘발견’일까?
빙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