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코스프레? 이상한 옷놀이 아니에요

그들은 지금 '진짜 나'를 입고 있어요

by 다다미 위 해설자

도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하라주쿠 거리에서 분홍 머리, 날개 달린 옷, 대형 무기 모형을 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만화책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풍경이었죠.


처음엔 저도 그랬습니다.

“어우, 뭐야 저 사람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을 오래 바라볼수록 묘한 감정이 밀려왔어요.


부럽다.

저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니.



일본 사람들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걸 일본어로 혼네(本音),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은 다테마에(建前)라고 부르죠.


말하자면,

“속으론 싫어도 겉으론 웃어야 하는 사회”입니다.


지하철 안에선 숨소리조차 줄이고,

회사에선 상사에게 무조건 고개 숙이고,

길거리에서도 감정 표현은 ‘미안합니다’가 먼저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이게 진짜 나야!”라고 외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코스프레입니다.



일본의 코스프레 문화는 단순한 ‘만화놀이’가 아닙니다.

그건 삶의 다른 얼굴,

혹은 진짜 나를 꺼내는 해방의 순간입니다.


평소엔 과묵한 회사원이,

그날 하루는 만화 속 히어로가 됩니다.

평소엔 조용한 학생이,

그날만큼은 마법소녀가 됩니다.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신 적 있나요?

놀랍게도, 그들은 그 순간 세상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이 옷을 입을 때만,

진짜 제가 되는 것 같아요.”

한 참가자가 제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게다가, 일본 코스프레의 디테일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옷은 직접 패턴을 떠서 바느질하고,


가발은 염색하고 커스터마이징 하며,


캐릭터의 말투와 포즈까지 연습합니다.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몰입이고, 장인정신입니다.


일본은 그런 나라입니다.

남들이 뭐래도 “끝까지 간다.”

그게 바로 이 나라 문화의 뿌리죠.



우리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면

같이 모여 응원하고,

노래를 떼창 하고,

슬로건을 흔들며 사랑을 표현하죠.


일본은 다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걸 ‘자신이 된다’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밖으로 사랑을 보내고,

그들은 안에 있는 나를 꺼냅니다.



코스프레는 가볍지 않습니다.

그건 어떤 사람에게는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통로입니다.


“이상한 옷이네.”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사람은 지금, 억눌린 마음을 꺼내는 중이구나.

저 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용기구나.



누구나 가끔은,

내 안의 진짜 나를 꺼내놓고 싶어 집니다.


일본의 코스프레 문화는

그 억눌린 마음이 만든,

가장 창의적이고도 인간적인 해방구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번쯤

‘진짜 나’를 입어야 할 때가 오는 법입니다.


그게 꼭 코스프레가 아니어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본은 왜 이렇게 축제가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