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로 읽다 01. 이용규 <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
몇 년 전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불현듯 생각났다. 한강의 괴물이 나타난 것 마냥 "90년대생은 이렇대" 호들갑 떠는 책이 너무 웃겼다. 90년대 생인 내가 이해하려고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나같이 나와 내 주변에 해당되지 않은 내용들 뿐이었다.
어느 순간 '90년대생'이라는 키워드는 'MZ세대'로 대체되었다.
가심비와 가성비를 따질 줄 알고, 다양한 SNS로 거침없이 스스로를 표현할 줄
알고, 타인보다 자기 스스에게 먼저 집중하는 세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서 내가 내린 MZ세대에 대한 정의이다.
놀랍게도 나와 내 주변은 나이를 제외하고 그 어떤 특징도 언론에서 정의하는 MZ세대에 속하지 않는다. 가심비든 가성비든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부러운 것도 없다. SNS에 사진이나 글 하나 올릴 때마다 수백 번을 되뇌고,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은 무조건 비공개다. 내 주변이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아니면 경제학과로 넘쳐나서 그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문과 감성의 소유자들이 없다. 내 주변이 전부 대학원에서 최소 2년씩 굴림당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저녁 10시에 집에 가고, 주말 랩 세미나가 취소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던 삶을 최소 2년은 살았던 셈이다.
'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 작가는 MZ세대이자 강남 개포동에서 태어났고,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 변화로 쫓겨나듯 수원으로 이사를 갔으며, 서울 소재 4년제 예술대학에 진학한 학생이다. 책을 읽다 보니 연기예술학과 학생으로 짐작됐다. 책의 1부는 칼럼 형식의 글이고 책의 2부는 20대 중후반까지의 작가 개인 사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작가는 소위 인싸 중심이라 불리는 MZ세대를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 시내의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중산층 이상 18~24세'라고 정의한다. 출발점부터 MZ세대에 대한 나와 작가의 정의가 달랐던 탓인지, 나에게 이 책은 씁쓸한 마음만 남겨주었다. 어떤 점이 나로 하여금 이 책과 작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는지 감상평을 남기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원) 전부 수원에서 나왔다. 작가는 서울에서 쫓겨나듯 정착한 수원이 싫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수원은 생기 넘치는 젊은 도시이자 파란 도시이다. 박사과정을 수료만 하고 학위는 필요 없다고 교수님께 선포하던 29살까지 나는 수원에서 살았다. 결혼을 한 후 작가가 부러워하던 강남 3구 그 안에서도 진짜 강남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해 수원에서 살던 시절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고 있다. 내 성격 자체가 워낙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큰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딱 하나 있다면, 연어가 몇 없는 연어덮밥이 1.5배 정도 비싸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 태생부터 진짜 강남에 속하는 친구들이 어린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야에서 유명하시고 명석하신 교수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친구는 집에 늘 아버지가 아닌 교수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잘 사는 집에 해외 명문대를 진학해 벌써 교수 채용 과정을 밟고 있는 형제 밑에서 자란 친구는 몇 백만 원짜리 족집게 과외를 했어도 국내 명문대 하나 못 간 스스로에 대해 여전히 자책하며 산다. 마당에 품종 좋은 소나무가 있는 집에서 늘 무릎 꿇고 아버지를 마주하는 친구는 학교만 오면 그렇게 다리를 쩍 벌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신나 했다. 부모님과 식사하러 집에 간다는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는 사업하느라 바쁘신 부모님 때문에 가족끼리 밥 먹거나 외출한 기억은 당연히 없고, 유모님 하고만 놀던 기억뿐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집에서 '다나까'체를 쓰고 혼날 때는 무릎 꿇고 열중쉬어 자세를 취해야 된다는 압구정 부잣집 친구는 무조건 공대만 지원했다고 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공대 중에서 서울 밖 이원화 캠퍼스만 골라서 지원했어. 그럼 통학이 힘들다는 핑계로 집을 떠날 수 있잖아.'
물론 화목하게 잘 사는 집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집이 그렇듯 저마다 말 못 하는 사정이 존재한다. 물론 잘 사는 집에서는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의 범주가 더 넓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집이 그렇듯 저마다 말 못 하는 사정이 존재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조져진 세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조져진 세대의 기준은 서울의 중산층 이상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다. 책을 덮고 나니 생각보다 조져진 세대의 범위가 넓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외의 수도권 출신들, 대전 위로는 전부 서울이라고 말하는 찐 지방 출신들, 태어나서 서울 한 번 와 본 적 없는 청춘들, 가족들의 생계유지로 인해 대학을 포기한 청춘들, 과외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피자박스를 접고 배달을 뛰고 새벽 대리운전 일을 하는 청춘들... 이들을 작가는 뭐라고 정의할지 궁금해진다. 태초부터 조져져서 정의할 수 없으려나. 그리고 이들의 시선엔 작가가 과연 조져진 세대에 속할지 궁금해진다.
MZ세대, 인싸 중심이라고 외치지만, 인싸와 아웃사이더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언제나 존재했다. 그 유명한 X세대가 주목받던 때에도 분명 골방에 틀어박혀서 하루살이로 연명하던 청춘들이 있었을 것이다. MZ세대가 더 고통받는 이유는 다양한 SNS 채널 탓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수원에서 태어난 나는 인스타그램이 생기기 전까지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는 100대 그룹 회장들만 사는 줄 알았다. 인스타그램이 생기고 나서 보니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부자가 이렇게 많구나를 알았다. 같은 동네 살던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친일파 청산이 안돼서 그래’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그렇다고 우리는 스스로가 조져진 세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것은 틀림없이 너저분한 실패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써내는 것은 이 세대의 실패 서사는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서점에는 없기 때문이다. 84page
세대를 막론하고 아픈 청춘들은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조졌다고 한탄하며 세월을 허비할 테고, 누군가는 시작은 조졌지만 끝은 적어도 조져지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세월을 노력할 테다. 우리 세대의 절망이 서점에 없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그 어느 세대든 절망과 실패는 서점에 없다. 실패는 아주 흔하고 성공은 드물기에, 간혹 성공한 전 세계 사람들이 서점에 모여있을 뿐이다.
+) 그럼에도 한 번은 읽어볼 법한 책이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20대 청춘을 보냈구나'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