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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Mar 24. 2022

우리가 감히

취향대로 읽다 02. 아트 슈피겔만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를 어언 한 달째 보면서 전쟁이란 단순하게 한 사람으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욕과 무지를 지지한 수많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발발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 반대편에 있는 참된 지도자와 그를 따르고 돕는 수많은 현명한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평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유독 2월, 3월 내내 세계 2차 대전 기록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빅터 플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들> 모두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각자가 경험한 전쟁을 그려낸 잔상들이다.


이렇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우리가 감히 이야기를, 책을, 영화를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그때의 일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주친 처참함에 가슴 한편이 뻥 뚫린 채 몇 날 며칠을 보낸다. 그래서 나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되도록 피한다. 이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화라서 다른 기록들보다 가벼울 거야, 영화보다 낫겠지



하지만 이건 무지에서 비롯된 나의 오산이었다.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처참했고 비참했다. 책 끝에 다 달아서 느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지구 상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마주함은 유명한 책이라서 보다 반드시 알아야 될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절대 과거에 있었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과거이자 현재 진행형이자 가까운 우리의 미래이다.


아트 슈피겔만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 블라덱의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 형식으로 기록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이 전의 이야기부터 그 이후,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들이 매 장마다 교차되면서 다각도로 블라덱과 아티(아트 슈피겔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아티는 왜 유대인을 쥐로 묘사했을까?

아티는 책에서 유대인들을 전부 쥐로 그렸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사람들이 보통 쥐를 혐오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그렸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짧은 생각이었다. 당시 나치가 유대인들을 절멸하기 위해 가스실에서 사용했던 독가스가 ‘치클론B’인데 주로 쥐를 죽일 때 사용하던 독가스라고 한다. 즉 나치가 유대인을 쥐로 취급했다는 뜻이다. 또한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국가가 없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한 나라에 정착했던 민족들이었지만, 동시에 이들은 유럽 각 국에서 점차 부를 쌓고 있었다. 국가 없이 떠돌던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던 유럽에서 돈을 잘 벌고 잘 살고 있으니 누군가의 눈에는 배알이 꼬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아돌프 히틀러가 탄생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던 존재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블라덱은 왜 여전히 구두쇠였을까?

나이가 많은 블라덱은 ‘여전히 구두쇠’로 묘사되고 있다. 배수공을 부를 비용을 아끼고자 직접 지붕에 올라가고, 커피 값을 아끼고자 몰래 뒷문으로 호텔에 들어가고, 온갖 고물들을 전부 보관한다. 이 외에도 다양하게 돈과 물건을 아끼고, 돈을 쓰는 말라를 나무라 한다. 그래서 늘 말라와 다투고, 아티 역시 이런 아버지를 보며 답답해하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한다.


블라덱과 그의 아내 아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이들은 블라덱 덕분에 매우 늦게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끝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장사꾼이던 블라덱은 사업수완이 좋았고 호남자였다. 그런 그의 기지는 나치를 피해 숨어있던 시절부터 수용소에서 까지 발휘되었다.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과 물건을 숨기고 거래하며 버티고 버텨냈다. 심지어 다른 수용소에 있던 아내 아냐까지 모종의 거래와 기지 발휘를 통해 살려낼 수 있었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26page


어찌 됐든 모든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연민의 , 경멸의 , 외면하는 ,  모든 눈빛들을 감당해야 되었던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해서, 생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해서, 생존했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했다고 나쁘다고 우리는 감히 말할  없다.


생존을 위한 거래에 쓰일 수도 있는 모든 것들을 아끼고 감추며 살아왔던
그의 과거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블라덱은 왜 아내의 일기장을 다 태워버렸을까?

블라덱은 인고의 노력 끝에 아냐와 함께 생존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홀로코스트를 버티며 살아남은 이유가 되었던 아냐가 죽은 뒤 블라덱의 심경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70page


블라덱 역시 홀로코스트를 잊고자 수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아마 아냐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냐는 끝끝내 나치에게 이기지 못했다. 그런 아냐의 생각과 아냐가 겪은 모든 일들이 담긴 일기장은 블라덱에게 고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넘기지 않고 겉표지만 보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일들과 아냐의 죽음이 블라덱으로 하여금 나치에게 패배를 선언하도록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태워버림으로 나치에게 일종의 승리를 선포한 것 아닐까



블라덱은 왜 인종차별주의자일까?

아티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블라덱이 흑인을 혐오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아버지가 흑인을 차별할 수 있냐'라고 역정을 낸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 역시도 블라덱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누구보다 더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생존자이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됐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하는 쪽이 됐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141page


그들 중 일부는 되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블라덱 역시 이에 속했던 것 같다. 도가 지나치지 않았지만, 일련의 이유로 인종 차별하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뭐가 어때, 그렇다고 저들이 아우슈비츠에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우리가 괴팍해진 수많은 블라덱들을 미워하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모두 함께 짊어져야 한다.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소설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제대로 직면하고 함께 그 마음을 느껴야 또 다른 아돌프 히틀러가 탄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티는 왜 '차라리 부모님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겪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티는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리슈형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형은 잘 나가는 의사가 돼서 아리따운 유대인 여자와 결혼도 했겠지 라며 그렇지 못한 스스로와 비교하고 자책한다. 그 자책은 곧이어 부모님이 겪은 아우슈비츠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죄책감으로 까지 번진다. 아티는 블라덱과 아냐가 겪은 홀로코스트를 겪어본 적 없는 자신이 말한다는 것 자체에서 모순을 느낀다. 그리고 <쥐> 1부가 발매된 후 단 번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 죄책감은 더 커져갔다.


아티의 삶은 죄책감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어른들은 누구나 잠자면서 저런 소릴 내는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아티의 모습과 잠자는 동안에도 아우슈비츠를 벗어나지 못하는 블라덱의 모습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물림되는 죄책감이 아티로 하여금 아버지에게서 계속 도망치게 만들고 아버지를 싫어하게 만든 모양이다.


아이는 죄가 없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이는 예외였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144page


끝날 것 같지 않은 죄책감이 아티를 집어삼켰고, 어머니의 죽음이 다시 한번 죄책감으로 둔갑해 아티를 집어삼켰다. '어디에다 가두면', '이게 얼마나 귀했냐면', '넌 모를 거다 아티' 아버지의 말들은 언제나 죄책감이란 화살촉이 되어 아티를 향해 명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독일이 80년 만에 만장일치로 재무장을 선언했다. 80년 내내 사죄한 독일이지만 재무장 소식에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우스갯소리로 '예술대학 입시 정원부터 늘려라' 말들도 나왔지만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사죄를 하고 배상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잔인하리 만큼 현재 진행 중인 역사는 바뀌지 않고 생존한 사람들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는 홀로코스트를 보며 우리나라 역사가 씁쓸했다. 주목받지 못했던 변방의 작고 가난한 나라였던 탓에 일본의 침략과 극악무도한 짓은 지금도 잊혀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르는 그때의 일들이 그렇게 잊히면 안 되는 것 같다.



+) 수많은 수용소들 중 아우슈비츠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나머지 수용소들은 애당초부터 절멸 수용소였기에 생존자가 0명이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는 강제수용소였다가 패배의 기운에 휩싸인 나치가 뒤늦게 절멸 수용소로 사용해서 생존자들이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기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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