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식을 하다 보면 나는 종종 고인의 얼굴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이미 숨을 거둔 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삶은 곁에 서 있는 가족들의 표정과 말투, 서로를 대하는 태도 같은 데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평생 가장이었는지, 누가 참고 살아왔는지, 누가 끝까지 곁을 지킨 사람인지 같은 것들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날의 입관식이 꼭 그랬다.
고인은 노환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였다. 오래 앓다 가신 몸은 이미 많이 야위어 있었고, 죽음은 갑작스럽다기보다는 긴 시간을 건너온 끝에 조용히 내려앉은 숨 같았다. 입관식에는 최소한의 가족들만 참여했고, 누군가 소리 내 울거나 바닥에 주저앉는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감당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오래 간병을 하고, 여러 번 마음으로 준비를 해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함 같은 것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수의를 입은 할아버지는 차가운 안치대 위에 누워 있었고, 가족들은 그 곁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관에 모시기 전, 마지막으로 얼굴을 뵙는 시간이었다. 고인의 아내이신 할머니께서 고인을 추모하는 기도로 입관식이 시작이 되었고, 기도가 끝나자 원망섞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양반이… 나한테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알아요.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어…”
처음에는 혼잣말처럼 시작된 말이었는데, 곧 하소연이 되었고, 이내 오래된 투정처럼 이어졌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거칠게 들리지 않았다. 분노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말을 뒤늦게 꺼내놓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그 할머니를 한참 바라보게 되었다.
억울함을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높지 않았고, 화를 내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순한 기색이 먼저 묻어났다. 맞서 싸워온 사람의 말투가 아니라, 오래 참고 살아온 사람의 말투였다. 그래서 문득, 아 이분은 평생 이렇게 살아오셨겠구나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키는 쪽을 택하고, 따지기보다는 넘기고, 속으로 삭이며 견뎌온 사람. 젊은 날에도,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도, 중년의 세월에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수의를 입은 남편이 차가운 안치대 위에 누워있고 자식들이 그 곁을 둘러서 있던 바로 그 시간에야 비로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더는 참을 이유가 없어져서, 이제는 누가 듣든 상관없다는 듯, 늦게 도착한 고백처럼.
부장님은 할머니 곁에 서서 천천히 말을 건넸다. 좋은 데 가셔서 기다리고 계실 거라고, 이제는 절대 화 안 내실 거라고, 오히려 이젠 할머니께 미안해하고 계실 거라고. 먼저 가서 자리를 닦아놓고 맞이하고 있을 테니 너무 원망하지 마시고 슬퍼하지 말라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는 것이 보였고, 나는 그 작은 변화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장례식장에서의 위로는 진실보다도,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는 말이면 충분하다는 걸 그때 다시 느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은 부모가 그런 속 이야기를 꺼내면 민망해서라도 말리기 마련인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그런 얘기 왜 해요” 하고 끊지도 않았고, 체면을 세워주겠다며 자리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끝까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막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받아들이는 얼굴. 그 침묵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에게 지금 필요한 건 체면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아들도 많이 울었다. 눈가가 계속 젖어 있었고, 입관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분명 깊이 슬퍼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마음속까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를 심하게 탓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고 자신을 벌주는 기색보다는, 그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묵묵히 감당하는 표정에 가까워 보였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서 죄책감이 없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애써온 사람의 태도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곁에서 지켜본 사람의 추측일 뿐이지만, 그날의 인상은 오래 남았다.
그 가족은 형편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단단해 보였다. 서로에게 할 도리를 다해온 사람들 같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곁을 지키는 모습이 괜히 마음을 놓이게 했다. 완벽한 가족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부장적인 남편이 있었고, 기죽어 살았을 아내가 있었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설움도 있었겠지. 그럼에도 함께 늙어왔고,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그 투박한 세월이 입관실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날,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슬픔이 적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울음도 있고, 투정도 있고, 하소연도 있고, 묵묵히 들어주는 침묵도 있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감싸 안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 장례라기보다는 삶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는데도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 나중에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원망보다는 그래도 함께 잘 살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 그런 소박한 다짐이 그날 영안실 한쪽에서 조용히 생겨났다.
지금까지 여러 입관식을 지켜봤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장 조용했고, 가장 담담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람 같았다.
사람 냄새가 나던, 아주 따뜻한 입관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