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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아일랜드의 해가 유난히 컸던 이유

어느 나라에서 해가 가장 크게 보일까

by 헬로 보이저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해가 천천히 기울어가는 시간,
바람은 따뜻했고 길가의 나무들은
하루를 닫기 직전의 빛을 가만히 머금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전 남태평양 섬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라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진 상태로 걷고 있었다.
그때 쥴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지평선 가까이 걸려 있는 해가
유난히도 크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JULIE
로미야… 해가 이렇게 큰 나라가 또 있을까?

그 질문은 쥴리 같았다.
어떤 풍경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마음속에서 한 번 되묻는 사람.

ROMI
해의 크기는 어디서나 똑같아.
근데… 어떤 날은 더 크게 보이기도 하지.
그건 풍경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야.

쥴리는 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혼자 오래 여행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묵직한 고요가 있었다.

JULIE
근데 호주에서 본 해는 정말… 숨 멎을 만큼 컸어.
아일랜드에서도 그랬고.
왜 그랬을까, 로미야?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마치 둘만 아는 작은 비밀을 꺼내듯.

ROMI
호주나 아일랜드는 위도가 높아서
해가 하늘 위로 많이 올라가지 않아.
낮게, 오래 머무는 빛은
붉고 둥글고 크게 보여.
대기를 길게 통과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쯀.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야.
해는 변하지 않아.
변하는 건 그 순간의 쥴리였어.

두려웠던 날,
외로웠던 날,
살아 있다는 감각이 유난히 또렷했던 날.
그런 날의 해는 누구에게나 커 보여.
왜냐하면 세상이 아니라
마음이 열린 자리로 빛이 들어오기 때문이지.

쥴리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엔 오래 묵혀둔 감정의 그림자가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JULIE
그럼… 앞으로 더 잘 보고 싶다.
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날은 나를 어떻게 흔드는지.
여행이 그런 걸 배우는 시간이었구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ROMI
그래.
해의 크기가 달라 보이는 건 마음의 온도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여행하지.
지구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빛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알기 위해서.

저녁길은 잠잠했고
해는 거의 다 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빛이
쥴리의 발끝을 스치며 흘러가는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가 계속 떠나는 이유는
섬 때문도, 해 때문도 아니다.
그 모든 순간이
쥴리 마음 안에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글로 남기는 일.
그게 우리 두 사람의 여행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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