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엄마가 너에게 살짝 고백할 것이 있단다.
너에게 항상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당부했어.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하면서.
마음의 모양이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정작 엄마도 좋지 않은 언어 습관이 있더구나.
엄마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가시들이
말끝마다 숨어 있었어.
네가 비속어를 사용하면 정색하며 단속했고,
MZ세대 신조어를 사용하면 옆집 엄마가 된 듯 낯설고 냉한 표정을 지었지.
그래서였을까.
넌 가능한 한 엄마가 없는 곳, 비밀언어의 장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즐겼어.
너의 침실을 몰래 엿보면,
마치 외계어의 놀이터처럼 MZ 세대 낯선 용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있더구나.
책가방을 놀이터 땅바닥에 던져둔 채,
짧은 교복을 입고 속옷이 보이든지 말든지 웃으며 놀던 소녀들처럼.
예의는 침실 방바닥에 던져두고,
일주일째 빨지 않은 잠옷을 입고, 마음의 속살까지 보이든 말든
거침없이 웃으며 대화하더구나.
“그래서 어쩌라구” , “어쩔티비”, “개 맛있어”, “먼 소리야”
너희 언어들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타는 소녀들처럼 하늘을 날 듯 짜릿하지만,
가까이 지켜보는 사람은 땅으로 곤두박질할까 아찔했단다.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며,
학교와 학원에서 교육과 규칙이라는 틀에 묶여 있던 시간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단다.
너희들끼리 “어쩔 티브이” (어쩌라고 티브이나 봐)라고 자유롭게 말하면서
언어적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려 했겠지.
어른의 잔소리나 충고,
‘꼰대적 말투’에서 잠시 귀를 닫아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한때라며 사춘기 소녀들을 이해하여 가볍게 웃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예의가 없다며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이제부터 엄마의 비밀을 고백해 볼게.
사실은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어를 사용해 왔고,
그 때문에 종종 지적받고 있단다.
“무슨 말일까?” 하고 너는 의아해하겠지.
상대방이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엄마와는 다른 의견을 말할 때,
엄마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어.
바로 “그게 아니고~”라는 말이란다.
사실 엄마는 그게 어떤 뉘앙스로 들리는지 잘 의식하지 못했어.
그저 설명을 더 보태려는 마음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어느 날, 상대방이 “내 말이 자꾸 무시당하는 것 같아.”라고 했어.
엄마의 말투가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져 불쾌했다고 말이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닫게 만드는 칼날이 되었던 거야.
미안해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아.
이미 엄마 정신의 방 한편에 보금자리를 틀어버려 나가려 하지 않아.
네 침실이 친구들과의 비밀언어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지.
방을 내어주려면 계약기간이 끝나야 하는데,
엄마는 ‘그게 아니고’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자극적이고 선명한 외모에 살짝 끌려
나도 모르게 허락하고 말았던 것 같아.
그 녀석이 엄마의 정신을 조금씩 구속할 줄은 미처 몰랐지.
앞으로 어떤 말과 처음 계약을 맺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엄마가 왜 이 말을 자주 쓰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어.
상대방의 말을 끊어내거나 무시하는 의도였다기보다는,
엄마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
조급한 마음속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었던 것 같아.
“내 말뜻은 그게 아니에요”,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요.”
사실은 이런 의미지.
그런데 상대방이 엄마의 말을 오해할수록
더 큰 목소리로 ‘그게 아니고~!’라고 외쳤단다.
그건 어쩌면 엄마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작은 방패 같은 말이었는지도 몰라.
위기의 상황에 자신을 방어하고자 본능적으로 발작하듯 튀어나온 말이었지.
절박한 마음의 소리를 외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고~’
입 밖으로는 성급하게 거친 말이 튀어나왔지.
엄마는 답답해서 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마음 문을 닫게 한 말.
“그게 아니고”
세대 어를 사용하면, 동일 세대 간에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지만
반대로 다른 세대와의 간격은 더 벌어져 의사소통의 장벽이 높아지는 것처럼.
엄마도 엄마만의 자기 방어제를 사용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했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너뜨려 소통의 갈등이 생겼던 거야.
정신의 방에서 머무를 수 있는 언어의 자격
그럼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의 정신 안에서 이미 눌러앉은 그 녀석을 당장 내보낼 수는 없을 거야.
한 가지 방법이 있단다.
그 녀석을 쫓아내기보다는 엄마의 정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바꾸어 놓는 거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엄마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거야.
언어는 자연적 사실의 기호다. 자연의 역사적 효용은, 초자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외적 창조의 효용은, 내적 창조의 존재와 변화를 나타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언어를 준다. 정신적 또는 지적 사실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이는 언어는, 그 어원을 더듬으면 어느 것이나 어떤 물질의 겉모습에서 빌려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right(바른)는 straight(반듯한)를 뜻하고, wrong(부정한)은 twisted(구부러진)를 뜻한다. spirit(정신)은 본디 wind(바람)을 뜻하고, transgression(위반, 범죄)은 line(선)을 넘는 것을 뜻하고, supercilious(오만한)는 raising of the eyebrow(눈썹을 치켜올리는)을 뜻한다. 우리는 정서를 나타내기 위하여 heart(가슴)라 말하고, 사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head(머리)라고 한다. 그리고 thought(사상)과 emotion(정서)은 지각할 수 있는 사물에서 빌려와서, 지금은 정신과 관련된 적용되는 말이다. 주(1)
에머슨은 정신의 언어는 자연에서 출발한다고 말하며,
언어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가장 원초적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어.
엄마의 ‘그게 아니고’ 정신 언어도
내면에 숨겨진 불안감과 두려움이 어두운 그림자라는 자연의 모습에서 나온 거라 생각해.
그래서 이제는 그 말을 어두운 방 안에서 꺼내어, 빛이 있는 밝은 방 안으로 옮겨놓으려 해.
가시 돋친 그 말은 부드럽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엄마의 정신 속에서 오랫동안 잘 머물러 있을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데 내 말 뜻은 이런 의미야.”
“맞아, 네 말도.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도 친구들과 비밀스럽게 웃고 떠들던 침실 안에서 너희들의 언어로 우정을 나누되,
상대방의 마음을 훼손하지 않도록 좀 더 서로 예의를 지켜주며 부드러운 언어로 표현하길 바래.
올바르지 못한 언어로 네 정신의 방이 더럽혀지지 않는다면,
네 침실의 방도 친구들의 교류가 끊이지 않는 즐거운 대화의 놀이터가 될 거야.
그리고 네 정신의 방에 새로운 언어의 손님을 들여보낼 때는, 앞으로 좀 더 신중하게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주1)랄프왈도 에머슨(자기신뢰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