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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평범했다.

갈등을 피하지 않는 연습, 그리고 재즈가 알려준 것

by 백현선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가진 본능 같은 것이다.

한 번은 앙상블 수업 중에 이 갈등이라는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앙상블 수업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께 지적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지적의 이유는 “지금의 연주는, 누구 하나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같이 음악을 만든다는 건 결국 관계를 맺는 일이고, 진짜 관계에는 반드시 다양한 감정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교수님은 “진짜 관계는, 서로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며, 서로를 아끼고 기대다가도 다투고, 화내고, 때로는 욕도 할 수 있어야 해. 근데 너희는 지금, 누구 하나 부딪히지 않으려 나이스하게만 구느라 눈치만 보다가, 결국 피상적인 사이로 머물러 있잖아.”라고 열정적으로 피드백을 주셨다.


그날 우리는 실험을 했다. 서로 연주로 싸워보기, 위로하기, 한 명씩 돌아가며 리드해 보기, 그 리더의 연주를 잘라먹고 주도권을 뺏어보기 등, 일부러 갈등을 유발하고, 그걸 발전시키고, 또 해소해 보거나 내버려 두는 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로, 나는 텐션을 단지 스케일상의 개념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리듬, 텍스처, 다이내믹, 모든 요소 속에서 갈등과 해소의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느껴 보기로 했다. 단지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요소가 어떻게 부딪히고, 반응하고, 다시 조율되는가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 크게 느낀 것은,

‘불편한 감각’이 단지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낯섦은 기존의 듣는 방식, 반응하는 방식 자체를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감각 체계가 확장되기도 한다. 처음엔 불편했던 감정이 오히려 다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고, 그 불편함을 감당하는 순간부터 음악 안에서의 참여 방식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경험은 내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갈등을 피해 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머무르며 그저 경험하는 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불편하고 낯선 순간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느껴보는 것. 그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재즈의 미적 경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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