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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바깥에서

음악 레슨, 그리고 엄마의 뒷모습

by 백현선

레슨을 끝내고 학생과 연습실을 나서는데, 복도에 다른 방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 모녀가 있었다. 한국에서 여름을 맞아 뉴욕으로 여행 겸 레슨을 받으러 온 듯했다. 고등학생이거나 이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딸은 휴대폰으로 쇼츠를 보고 있었고, 엄마가 연습실에 들어가자며 딸의 물건을 챙기다 딸의 팔을 건드렸는지 화면이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러자 딸은 갑자기 불같이 엄마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다가도, “그래도 엄마한테 그런 표정은 아니지 않니?” 하고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는데, 그 모습이 무척 서글퍼 보였다.


이내 딸은 “이제 연습할 거니까 근처 카페에 가서 이따가 레슨 받을 장소나 똑바로 찾아놔”라며 명령조로 말하더니 문을 가차 없이 쾅 닫고 들어갔다. 그 뒤로 엄마는 문 너머에 대고 “연습 잘하고, 끝나면 문자 해, 파이팅!”을 외쳤다.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되짚어보게도 되고, 음악을 하며 저렇게 든든한 서포트를 받는다는 게 조금은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열정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에 스며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렇다. 가까이에 있기에 더 쉽게 날이 서기도 하고, 또 그만큼 쉽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시작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힘도 가장 자주 그들로부터 나온다. 복도에서 들려온 “파이팅”이라는 엄마의 목소리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의 무게를 담은 말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그 장면을 마음에 새겼다. 음악을 하며 무대 위에서 수많은 감정을 소리로 사람들과 나누는데, 과연 이렇게 일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가족의 목소리를 나는 얼마나 제대로 나누어 본 적이 있었을까.


오늘은 괜스레 가족의 안부를 한 번 더 물어본다.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조금은 단단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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