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라는 사회적 모델-게임이론과 재즈
John A. Kouwenhoven는 “재즈는 Emerson이 말한 ‘완전한 연합은 고립된 개인들로 구성될 때 가능하다’는 이상에 완전한 표현을 부여한 최초의 예술 형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What’s “American” about America, p.53).
재즈는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미국 사회의 이념적 구조, 즉 개인주의와 공동체성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예술적 모델로 기능한다.
재즈는 흔히 ‘자유’의 음악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고립된 자율성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 상호의존적 자유다. 각 연주자는 스스로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늘 타자의 반응 가능성을 고려한다. 이는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감각이 세공되고 규칙이 공유된다는 점에서, 게임 이론의 반복 게임(repeated game) 구조와 유사하다.
반복 게임이란, 동일한 참여자들이 게임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전략을 조정하고 신뢰를 형성하는 상호작용 모델이다.
이 구조는 Bill Evans Trio (with Scott LaFaro, Paul Motian)의 연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Evans는 전통적인 리더-반주자 구조를 해체하고, 세 연주자가 동등하게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트리오 모델을 만들었다. LaFaro와의 반복적인 연주를 통해 서로의 언어를 학습하고 예측하며, 감각적인 질서를 조율해 나간다. 이들의 연주는 반복 게임에서 신뢰와 기억이 쌓여가며 전략이 진화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반면, Keith Jarrett Standards Trio (with Gary Peacock, Jack DeJohnette)는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에 가까운 모델을 제시한다.
내쉬 균형이란, 각 참여자가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 성립하는 안정된 상태를 뜻한다. 이 트리오에서 각 연주자는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타인의 선택을 예측하며, 더 나은 전략으로 바꿀 필요 없이 안정적인 상호작용을 유지한다. 불필요한 수사 없이 최소한의 제스처만으로 흐름을 완성하는 이들의 연주는, 예측 가능성과 균형을 전제로 한 이상적 합치의 예다.
Jarrett의 트리오가 균형과 정제된 흐름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모델이라면, Jason Moran의 Bandwagon Trio는 규범 자체를 재구성하는 실험의 장이다.
Tarus Mateen, Nasheet Waits와 함께한 Moran은 고정된 규칙을 의도적으로 교란하며, 음악 속에 불확실성과 협상의 공간을 도입한다. 이들의 연주는 게임의 규칙 자체를 새롭게 쓰며, 매 순간 새로운 질서를 생성해 낸다.
이처럼 재즈는 예술 형식을 넘어, 선택과 흐름, 자율성과 협력, 규칙과 변주라는 인간 사회의 원리를 탐색하는 살아 있는 사회적 모델이다.
즉흥의 순간은 단지 우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축적된 신뢰 위에서 성립되는 선택의 결과이며, 타인의 존재에 반응하며 새롭게 균형을 설계하는 지속적 실천이다.
예측할 수 없지만, 서로를 잃지 않으려는 대화와 움직임. 삶과 닮은 그 행위 속에서, 우리는 흐름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