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y G 고전 칼럼 8> 상식에 관한 담론

- 자사 <중용> 2

by Tasty G

<Tasty G 고전 칼럼 8>


상식에 관한 담론과 염치의 상실


- 자사 <중용> 2


“桃李無言 下自成蹊 (도이무언 하자성혜)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밑에는 저절로 길이 난다.”

(사마천 사기 사마상여열전)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 향기에 열광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고유의 향기를 갖게 되고, 그 향기는 타인을 끌어들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다.’ 보면 결국 모두와 함께 갈 수 있다.

<안회>

공자에게도 자신만의 향기로 삶을 일궈낸 제자들이 있었다. 두 명만 꼽으라면 안회와 자로다. 안회와 자로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안회가 내향적, 문인적, 침착함, 호학, 순종의 향기라면 자로는 외향적, 무인적, 저돌적, 의리, 저항의 향기다. 한마디로 안회는 성실하고 순한 학자요, 자로는 터프한 무인이다.


“子曰 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

(자왈 회지위인야 택호중용 득일선 즉권권복응이불실지의.)

공자가 말했다. 안회의 사람됨이란, 항상 중용을 택하되 하나의 선(善)한 일이라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진심으로 고뇌하면서 가슴에 품어 잃는 법이 없었다.”

(중용 제8장 회지위인장)


안회를 향한 공자의 애정이 담긴 구절이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안회를 보며 처음에는 바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천 부족을 한탄했다. 제자를 인정하고 거울삼아 성찰했던 공자다!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안연사 자왈 희 천상여 천상여)

안회가 죽었다. 공자왈, 억!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논어 선진 제8편)


"내가 지금 안회를 위해 울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서 우는가." 41세에 죽은 안회 앞에서 공자는 곡을 했다. 안회를 잃고 곧이어 아들(공리)마저 잃은 공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했다. 안회의 죽음을 두고 공자의 '인(仁) 사상의 단절‘이라 해석하는 학자가 있다. “공자의 학문은 안회와 더불어 죽고, 공자라는 인간은 자로와 더불어 죽은 것이다. 학문으로는 안회가 수제자였고, 인간적으로는 자로가 애제자였다.”

자로.jpg <자로>

자로는 공자를 처음 대면할 당시에 유명한 깡패였다. 공자와의 첫 만남에서도 거만한 자세로 공자를 협박했다.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너는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라는 공자의 말에 자로는 공자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의리를 지켰다. “자로를 얻은 후로 나의 귀가 순해졌다.” 공자는 자로를 제자로 둔 후 자신을 험담하는 인물들이 사라져 귀가 편해졌다고 기뻐했다.


공자와의 만남도 있었지만, 자로라는 인물만 놓고 보아도 훌륭하다. 평생을 깡패로 무인으로 살다가 선비로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개가 고양이처럼 살 수 없듯이 타고난 성정을 고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자로는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적에게 “선비답게 죽을 수 있게 해달라.”라고 말한 후 의관을 정비하고 꼿꼿한 자세로 적의 칼을 받는다.


“子路問强 子曰 故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자로문강 자왈 고군자화이불류 강재교 중립이불의 강재교)

자로가 강함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흐르지 않으니, 그러한 강함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가운데 우뚝 서서 치우침이 없으니, 그러한 강함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로다!”

(중용 제10장 자로문강장)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화합하되 같지 않고, 소인은 화합하지 않되 서로 같다.”

(논어 자로편 제23장)


공자가 말하는 강함이란 ‘자신만의 향기를 지니면서도 타인과 화합하는 것’이다. 자연은 강하다. 어느 하나 같지 않고,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룬다. 자연에서 배울 일이다.

중용과 자사.jpg <중용과 자사>

“子曰 中庸其至矣乎 民鮮能久矣 (자왈 중용기지의호 민선능구의)

중용이여, 참으로 지극하도다! 사람들이 거의 그 지극한 중용의 덕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하는구나!”

(중용 제3장 능구장)


공자는 사람들이 중용을 능구(能久 꾸준한 실천)하지 않음에 한탄했다. 유교에서 말하는 진리도 불변이나 영원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다. “무엇이든 세 달만 실천하면 습관이 되어 체화된다.”라는 것이 공자의 경험담이다.


유교에 대한 오해로 군자와 소인을 계급의 구분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본래의 유교는 능구(能久 꾸준한 실천)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고, 군자도 능구하지 못하면 소인이 됨을 설파했다.


이렇듯 유교는 보편주의적인 인간애 즉 ‘휴머니즘’의 사상이다.

그리고 상식에 관한 담론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타인이 내린 후에 타는 것, 버스정류장에 주차 하지 않는 것, 보행자 신호에 차를 멈추는 것,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공공장소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자중하는 것, 수업시간에 늦지 않는 것, 버스 안에서 타인의 발을 밟았을 때 사과하는 것, 전시회장에서 작품에 손을 대지 않는 것 등.


상식을 논하면 손가락질 당하는 시대다. ‘당신이 뭔데?’라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염치(廉恥)가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받기 위해 상식을 세우고 지켜왔다. 자신의 이익에 극도로 민감한 세태라서 그럴까. 상식을 수긍할 줄 모르고, 상식에 화를 내는 ‘무기탄(無忌憚 아무 거릴 바가 없음)의 시대’다.


무기탄의 시대에는 ‘몰염치의 정치’가 판을 친다. 정치가 몰염치 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계를 넘은 형국이다. 정치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무기탄에서 기인한 ‘염치의 상실’이 정치와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늦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 무기탄의 브레이크는 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