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버크 <도끼장이의 선물>
<Tasty G 고전 칼럼 9>
도구의 이면과 희망
- 제임스 버크 <도끼장이의 선물>
올해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30년 되는 해다. 일본은 한 나라의 왕비를 자국의 경찰과 깡패를 동원해 살해했다. 사과는 둘째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의 영유권 주장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일본에 대한 혐오감은 자연스럽다.
올해는 광복 80년의 해다. 광복과 독립은 구분해야 한다. 독립은 ‘홀로 서는 것’인데 두 동강 난 한반도의 독립은 요원하다.
역사는 곧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존재는 역사를 갖는다. 나의, 내 시계의, 신발의 역사 등.
하지만 우리가 역사라고 인식하는 것은 대체로 지배자에 의해 편집된 기록이다.
역사는 지배자의 그늘에서 그의 입맛에 맞게 기록된다. 과장과 왜곡은 필수이며 편파적이고 허황되기도 하다
고려는 구텐베르크보다 약 200년 앞서 인쇄술을 발명했다. 고려의 인쇄술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기에 세계사에 변변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성경의 대량 생산을 낳았고 이는 종교혁명의 불씨로 자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인이었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의도는 책의 대량 생산을 통한 이윤추구였다.
구텐베르크의 뜻과는 별개로 인쇄술은 세계사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처럼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도구의 제작 의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를 때가 많다.
<도끼장이의 선물>은 발명품 즉 도구의 이면을 탐구한 책이다. 저자인 제임스 버크는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후 도구는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도구로 인해 세계사는 어떻게 변해왔는지 서술했다. ‘도끼장이’란 도구 제작자를 일컬으며 ‘도끼장이의 선물’이란 그들이 만들어낸 도구를 일컫는다.
선사시대에 주먹 도끼를 만들던 이들부터 중세의 구텐베르크 그리고 컴퓨터 발명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당대를 대표하는 도끼장이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지배자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구를 만들었다. 도끼장이들이 해왔던 많은 역할 중 몇 가지를 꼽자면 제사장, 천문학자, 인쇄업자, 추기경, 기술자, 철학자, 물리학자, 의사 등이다.
“초자연적인 신화를 도입함으로써, 지도자들은 명령 계층 구조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었고, 또 날씨가 훨씬 더 악화되고 생존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공포와 긴장에 직면해 있던 집단의 통합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제사장(지배자)은 신화를 만들어낸 도끼장이다. 신화를 이용해 자신이 신의 자손임을 과시하며 제사장은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동시에 신화는 피지배층에게 공포를 안겨주었고 끊임없이 공포를 상기시켜 순응하는 습관을 깊이 각인시켰다.
천문학자는 천체의 운행을 연구해 해와 달의 움직임에 관한 지식을 지배자에게 제공했다. 과학적 소양이 부족했던 피지배층에게 해와 달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지배자는 곧 신이었다.
최초의 인류는 세계의 작동 매커니즘을 신화를 통해 해석했다. 일출과 일몰, 바람, 번개, 화산 폭발, 계절의 변화 등 지구라는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신화로 해석했다.
“논리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그것은 논리학이 세계를 잘게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분석하는 표준화된 방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철학자도 도끼장이다. 신화의 힘이 쇠퇴하자 그 자리를 철학이 차지했다. “세상 모든 것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탈레스를 시작으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세상을 바라봤다. 철학은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나름의 답을 도출했다. 철학자들은 이를 지배자에게 헌사했다.
도끼장이는 불, 기록물(바통, 토큰, 동굴벽화), 문자, 철학, 전문화된 지식, 종교, 인쇄술, 산업혁명, 교육(학교), 통계, 의료, 컴퓨터 등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환원할 수 있는 선물을 만들었다.
지배자는 도끼장이가 만든 선물로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도끼장이의 선물은 체제가 안정되고 지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진 후에야 피지배층에게 공개됐다.
“크리스토퍼 플란틴의 사무실에서는, 대학 교수와 전 수도원장들이 교정자와 본문 편집자로 일했고,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본문이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는지를 검토했으며, 예술가들이 목판과 동판을 새겼고, 장인들이 인쇄를 하거나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 관계된 책들에 관해 자문을 했으며, 상인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 그 작업에 관여했다.”
(본문 중에서)
인쇄기술자 크리스토퍼 플란틴의 사무실 풍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널리 보급된 후 인쇄소에는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방대한 지식 중 입맛에 맞는 지식만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보급했다. 균형을 잃은 채 지식을 선별하고 독점했다.
“인쇄술을 통해서 점점 늘어가는 정보 뭉치들을 손실이나 변조 없이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교육기관은 이제 거꾸로 사람들로 하여금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이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전문 조직체를 꾸리도록 훈련시켰다. 전문가들의 주요한 목표는 정보 뭉치들의 배타적인 성격을 유지해서 자신들의 후견자인 왕이나 사회 질서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미디어는 현재 가장 강력한 도끼장이의 선물이다. 미디어의 본래 기능은 지배층 감시다. 피지배층은 지배층 감시의 명목으로 미디어에 특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은 지금 무엇을 위해 쓰일까.
과거의 도끼장이처럼 ‘미디어 도끼장이’ 역시 인류의 발전과 정의 실현에 무심해 보인다. 다수의 미디어 종사자들이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진실을 추적하지만 미디어 도끼장이(미디어업계의 지배층)는 여전히 지배자의 비서처럼 행동한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는 성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으로 다양한 사조를 형성한 것도 인류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자청한 것도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고 영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하다. 생활양식(문명의 겉모습)만 변했을 뿐 최초의 국가가 등장한 청동기 시대와 21세기는 비슷하게 돌아간다. 여전히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 부의 불균형은 더해간다.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이 생겨났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후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혼란으로 가득 찬 판도라 상자일지라도 그 속을 제대로 본다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도 그렇다. 불편하더라도 제대로 볼 때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득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