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생기면 누구도 막을 수 없지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by 서온랑

프롤로그


나는 내가 무감각하다고 생각했다. 큰 기복이 없는 감정과 부족한 감성 사이에서 나는 늘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사나? 아니면 나만 그런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지? 거센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구름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세상이 지루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에 내가 집착하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채색 같던 일상 속에서도 내가 유일하게 오래 붙잡아온 건 이야기와 글이었다. 그렇지만 이야기와 글이 없으면 지루한 일상.


그런 늘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내가 찾아온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곁다리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자꾸 시선이 갔을까? 나중에는 시선도 모자라 '그것'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는 게 없었고 검색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정보가 없는 걸 끝으로 그냥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정보를 찾아다녔고 곧 정보를 아는 사람에게 닿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보가 없이 간 터라 작은 정보만 얻고 돌아왔다. 더 알고 싶으면 알려준 논문을 읽고 다시 찾아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으로 돌아와, 논문을 하나하나 찾아 읽기 시작했다. 글줄마다 낯설고도 설레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점점 이끌어 갔다.


'인간이 바로 문학이며 문학이 곧 인간이다.'

문학을 '인간 활동의 결과물'로만 이해하던 종래의 관점을 넘어서서 '인간 활동' 그 자체가 문학이며,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가 문학이라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정운채 ( Jeong Un-chae ).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 문학치료연구 9.- (2008): 247-278. -


문학치료에서 치료라는 행위는 내담자의 아픈 부분, 즉 상처를 완전하게 없애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인간관계의 문제상황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감당'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김혜미. "문학치료 상담의 실천적 기초-문학치료 상담 및 프로그램 설계를 위한 기초 안내서-." 문학치료연구 74.- (2025): 43-81. -


'그것'은 바로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빠져들었고,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나서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네가 좋아하는 건 알겠어. 그렇지만 이건 기약 없는 약속처럼 들려"

"네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그거 상담의 하위 분야 아니야?"


“기약 없는 약속 같아.” 그 말은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 내가 택한 길은 애초에 지켜질 수 없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문학치료가 학문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한국문학치료학회가 발족한 1999년 무렵으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학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걱정도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분명히 말했다. “이거야.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야.”
현실적인 반응 앞에서 쉽게 주눅이 들었고, 설명할 만한 지식조차 부족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꾸준히 공부하고 활동하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넌 충분히 할 수 있구나'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문학치료는 단순히 상담의 한 분야가 아니라, '문학의 원래 기능이 곧 치유'라는 말에서 출발한 독립적인 학문이다. 즉, 심리학의 방법 중 하나로 문학을 활용하는 해외의 학문과는 달리, 한국의 문학치료학 서사이론은 국어국문학에 뿌리를 두고 문학 본연의 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난 아직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다. 나 홀로 썸을 타고 있다고 착각하는 중인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문학치료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해주셨다. "확신이 생기면 아무도 막을 수 없지.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러니까 너도 1년 간 충분히 경험해 봐." 아직 확신이라고 부를 감정은 없다. 그저 이거야!!라는 감정만 있을 뿐이다. 이 썸이 끝나면 사랑이 시작될까?


나에게 남은 시간은 1년 사랑이 시작될지 말지 모르는 시간. 이제 여기에 내 경험을 기록하려고 한다. 지금은 프롤로그일 뿐.



안녕하세요. 서온랑입니다.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이라는 학문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이론과 감정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라고 해놓기는 했지만, 일이 바쁜지라 올리는 때는 뒤죽박죽으로 올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