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나와의 다름에 대한 비교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것 예쁜 것에 대부분이 생각하는 기준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온갖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 사납게 생긴 얼굴, 두꺼운 다리, 큰 손, 넓은 이마와 부스스한 머리칼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콤플렉스가 아닌 게 없었었고 나에 대해서 마음에 드는 조그만 부분 하나조차 없었다. 손톱 발톱 모양까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두꺼운 다리가 싫었다. 날씬해지고 싶었다. 수년간 다이어트를 반복했고 몸무게는 늘었다 줄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늘 제자리.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다리 모양이 드러나는 바지보다는 다리 모양을 가려주는 치마를 입고 다녔다. 색깔도 거의 어두운 색이었다. 어두운 색을 입어야 덜 뚱뚱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면 ‘어 너 바지 입은 거 처음보다’라고 하는 직장 동료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 활동적인 나는 치마가 너무 불편했다. 활동하는 데 있어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편함보다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콤플렉스가 더 컸으니 편하지도 않은 옷을 가린다고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두운 색의 체형을 가리는 치마를 많이 입었다. 성인이 되고 대부분 시간을 남 눈을 신경을 쓴다고 편안함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직장 동료들이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자며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해보러 가자고 했다. 노랗고 검은 피부라고 생각했는데 의뢰로 나는 ‘여름쿨톤’ 진단을 받았고, 여름쿨톤은 연핑크, 연보라, 연민트 이런 피스텔톤이 잘 어울리는 색깔이었고, 내 옷의 대부분인 검은색, 회색, 갈색은 나의 얼굴 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었다. 내 옷장에는 단 한 벌도 그런 파스텔톤의 옷은 없었고 입어볼 생각도 안 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남자친구인 시절 서울 출장을 갔다가 연민트색의 니트를 선물로 사줬을 때 ‘뭐 이런 색의 옷을 사 왔냐’고 타박했지만 한 번씩 그 옷을 입을 때 얼굴이 밝아 보인다며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 나는 평생을 내가 가진 강점을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콤플렉스에 뒤덮여 단점만 가리기 위해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입고 싶지도 않았던 불편한 옷을 평생 입고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바뀐 것 같다. 남의 눈치를 덜 보려고 노력했다. 이제 검은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밝은 옷도 과감하게 산다. 가벼운 소재의 편안한 긴 원피스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옷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몸을 가리기 위한 용도와 기준으로 옷을 고르지는 않는다. 다리 모양이 드러나도 활동하기 좋은 바지를 주로 입고 육아를 하고 출근하고 외출한다. 아이와 걷다 잔디가 보이면 들어가 편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고 아이와 함께 잔디를 뒹굴기도 한다. 아직도 날씬해져서 사이즈와 스타일에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매일매일 한다. 하지만 옷 때문에 생기는 소소한 활동의 제약이나 불편함은 많이 줄었다.
마음가짐만 달라지면 되는 거였는데 늘 남과 나를 비교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내 두꺼운 다리는 콤플렉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다리 반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는가? 볼록한 이마, 도톰한 입술, 볼을 덮고 있는 주근깨….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귀여운 구석도 많은 나다. 나를 보는 나의 시각을 바꾸고 남에 대한 시선의 의식과 비교를 조금 내려놓았을 뿐인데 옷에 대한 속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조그만 변화로 삶이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가벼워졌다. 아직도 나는 내 얼굴과 내 몸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가 가진 아름다움을 찾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