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나
엄마의 생각은 흔히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생각과는 좀 달랐다. 좀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하는 소리에 ‘무슨 말이지?’라며 흘려듣고 지나갔던 것들이 몇 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했던 것들이 많다.
예로 학생 시절 잘하지는 못해도 늘 하는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나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하셨다. 그 대신 나에게 남들과 다른 특기가 될 수 있는 춤 같은 걸 끝까지 한번 배워보라고 하며 그런 취미와 특기가 있는 사람이 참 멋지다고 이야기했다. 수능을 치고 얼마 되지 않아 어중간한 성적으로 대학과 전공을 고민하던 때는 ‘너는 손재주가 많고, 어차피 목돈의 학비가 나가야 한다면 남들 가는 길 따라가는 것보다 일본으로 미용 유학을 가보는 게 어떠냐’는 라는 말씀하셨다. ‘당연히 남들 다 가는 대학, 나도 가봐야지 뭔 일본 유학이야’라고 했지만, 평생 나의 재산이 될 특기나 전문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은 ‘저 당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이야기했을까? 엄마 말을 들었으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했다. 시집와서도 힘든 일은 계속되었고 시댁과의 관계와 시부모님 그러니깐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돌봄 노동까지 아주 오랫동안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며 땀 흘렸던 가장의 역할, 자녀에게 있어 엄마의 역할 그리고 며느리의 역할까지 엄마에게는 너무 많은 역할이 부여되었다.
특히 며느리의 역할에서는 어린 내 눈에는 엄마에게 행해지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당하고 부조리했다. 어른이 된 지금 돌아봐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쁘게 행동했을 수 있을까 마음에 불이 난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참고 그 말도 안 되는 며느리의 역할을 다한 거야”라는 물음에 엄마는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당당해지고 싶었어. 나는 며느리의 최선의 도리를 다했고, 힘들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해. 그래서 후회도 없고 당당해”라고 하셨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책임감 있는 엄마에게는 그것이 당시 엄마에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는 좀 다른,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가난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가난하게 키우지 않았다. 필요하면 돈을 주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엄마의 지갑이 열렸다. 그때는 몰랐다. 자녀의 등록금을 내주기가, 타지에 있는 자녀의 용돈과 월세를 매달 꼬박꼬박 보내주기가 이렇게도 힘든지 몰랐다. 그전에는 ‘우리 집이 좀 부자였으면 좋겠다. 우리 집은 왜 돈이 없을까. 돈 많은 집이 부럽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직장인이 되고도 한참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가난했을지언정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가난하지 않기 위해서 엄마는 무던히도 많은 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셨겠구나 싶었다. 엄마는 소위 말하는 일머리가 있는 똑똑한 사람이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순간순간 인생에서 중요한 상황에서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모여 과거보다는 조금씩 더 편안해지는 삶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가끔 엄마가 조금은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났다면, 공부를 더 할 수 있었더라면, 시대적으로 제약이 많았던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오며 부러워했을, 애초에 포기했을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자식으로써 속상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그리고 자녀들을 책임감 있게 키워주신 엄마를 보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처럼 삶에 있어서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거센 바람에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아는 엄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엄마의 희생이 오빠와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재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의 희생에 미안해하는 것보다 더 많이 웃고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여드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온 엄마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남은 삶이 운명이 정한 그것보다 더 많이 길어지기를, 행복하기를,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엄마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