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by 윤관

1. 어딘가 그럴싸해보이는 영화를 찾아..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선정할때 이전부터 보려고 생각했거나 그저 내가 보고싶은 영화여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재미만을 위한 영화가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기 좋은 '그럴싸한' 영화를 찾다가 사후세계에서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찾는다는 주제와 1900년대 일본풍의 아련한 겨울배경이 나의 마음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원래도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던 나이기에 재미또한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영화를 보면서 졸았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터치하면서 영화가 얼마나 남았나 수시로 확인하고 중간중간 노래를 들으며 지루함을 버티면서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이 영화가 재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 분위기, 다큐멘터리를 찍은듯 한 고요함이 주는 여운과 내가 등장인물이 되어 깊이 생각해볼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나는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또,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은 다시 볼 것 같은 느낌이든다.

2. 줄거리

영화는 두 명의 남성이 계단을 올라가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남성은 림보역의 직원이다. 림보역은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오는 곳으로, 이 곳에서는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 중 ‘가장 소중했던 추억 하나’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림보역에서의 기억을 잃고 그 추억이 영원히 반복되는 천국으로 가게 해준다.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림보역을 거쳐 천국으로 가게된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림보역의 직원들도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다가 죽어서 림보역으로 오게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천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가지않았다고 표현하는 것도 맞고 가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도 맞다.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선택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것이다. 림보역의 직원 모치즈키 타카시와 시오리 사토나카도 마찬가지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오리 사토나카는 18세에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으며 소중했던 추억을 고르지 못해 림보역에 남게되었다. 모치즈키 타카시는 1945년에 22세의 나이로 태평양 전쟁 중 전사했으며 그에게는 교코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 또한 삶에서 소중했던 추억이 없다고 생각하여 선택을 하지않고 림보역에 남게되었다. 어느날 모치즈키는 자신이 천국으로 인도해야하는 사람 중 '와타나베'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혼자였던 쿄코와 결혼한 사이인 것을 알게되었다. 와타나베는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를 선택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떠올리기 위해 일생의 모든 순간이 담긴 비디오를 보던 중 와타나베는 어느 휴일의 공원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보게된다. 장면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휴일의 낮으로 ,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나온 와타나베는 공원 벤치에 앉아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이 날은 와타나베와 아내가 같이 영화를 본 마지막 날이 되었다. 와타나베는 이 날을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선택하고 림보역을 떠났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가 림보역을 떠난 후 와타나베의 자리를 정리하며 한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 편지는 와타나베가 모치즈키에게 쓴 편지로, 와타나베가 실은 모치즈키가 교코의 정혼자였던 것을 알고있었고, 자신에게 모치즈키가 교코의 정혼자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상냥함에 감사함을 남겼다. 또, 자신이 생전에 교코의 정혼자가 모치즈키였던 것에 대해 모치즈키를 질투했었음에도 그런 질투심까지도 극복할 만큼 긴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런 아내와 함께 보낸시간이 소중했음을 림보역에 와서야 깨달았다고 말하며 아내와의 추억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글을 남겼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가 남긴 편지를 읽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생전에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눠본 적이 없고, 그렇기에 소중한 추억도 없어 선택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코가 림보역을 떠나며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와타나베가 아닌 자신과의 기억을 선택한 것을 보고 자신도 타인의 기억속에서 소중했던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3년이란 시간을 함께보내며 진정으로 마음을 나눈 림보역에서의 모습을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남기고 림보역을 떠나게 된다.

3.1 가장 빛났던 것이 아닌 가장 평범했던 것

영화에서 와타나베는 가장 소중했던 추억 즉,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결정하지 못하여 선택을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다 그는 결국 특별하고, 화려했던 장면이 아닌 노년에 아내와 함께했던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고르게 된다. 보통 가장 소중했던 추억이라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하는 그였기에 더욱 더 특별한 기억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와타나베는 왜 특별한 기억이 아닌 아내와의 평범한 일상을 택한 것일까. 와타나베는 생전 다정한 남편이 아니었다. 신혼임에도 아내와 말 한마디 하지 않으며 신문을 보며 밥을 먹고, 평소엔 아내와 영화 한 번 보러가지 않았다. 그에게 삶이란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여겨질 정도의 특별한 일이라니, 있을리가 없다. 그러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와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휴일의 공원에서의 사소한 대화를 보게된다. 당시에만해도 그는 아내와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이 되었으며,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는 결국 행복, 그에게 있어서 살아있었다는 증거는 대단한 것이 아닌 아내와 마지막으로 나눈 사소한 대화였음을 깨닫는다. 와타나베는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에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곁에 있어준 고마움, 그리고 삶의 끝에서야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아내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와타나베는 가장 특별했던 기억이 아닌 그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준 아내와의 평범한 일상을 선택했던 것이아닐까.

3.2 선택하지않음으로써 책임을 진다

줄거리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영화에는 이세야 유스케라는 젊은 나이에 림보역으로 오게된 남자가 있다. 그는 림보역에 같이 온 사람들 중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세야는 과거의 추억을 선택하기보다 미래에 하고싶은 일을 상상하여 그것을 선택하고 싶어했다. 또, 그는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삶을 책임지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라고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며 결국 선택을 하지않고 림보역의 직원으로 남게된다.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삶을 책임지는 방식 이 될 수 있다"니 무슨 의미일까. 이세야는 아마 이승에서 그의 삶이 만족스럽거나 올바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모든 기억은 잃고 자신이 선택한 기억만이 영원히 반복되는 책임없는 천국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선택하지 않으면 책임을 지는 거라고 할수있나? 선택하지 않으면 이승에서의 기억을 잃지 않게되고 그렇다면 림보역의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그 기억을 되새기고 반성함으로써 한층 더 성숙한 자신으로 거듭날수도있겠다. 그치만 그건 그저 이세야 안에서의 일이다. 그가 만약 이승에서의 그의 인생을 반성하더라도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가 잘못한 행동들은 이미 이승에서 영향을 미쳤고 그것에대해 누구가에게 사죄하거나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그가 그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지라도 그저 그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부처가 될 가능성을 의미하는 '불성' 의 관점으로 보면 이세야는 아직 번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승에서의 기억들로 인해 번뇌에 휩싸인 이세야는 림보역에서 열반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세야의 입장에서 열반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승에서의 잘못한 기억들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뉘우침으로써 결국 해탈하고, 가장 소중했던 기억 하나를 선택해 다른 번뇌들은 전부 잊게되는 진정한 열반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극 중 이세야의 모습이 워낙 천방지축에다가 자기 고집이 강한 캐릭터로 나와서 이세야가 해탈하고 열반에 오른 모습이 상상이 안되긴 하지만 뭐, 막이 내린 후 등장인물들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니까.

3.3 소중했던 것, 소중히 여겼던 것

작 중 모치즈키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택을 미루고 망자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는 긴 시간동안 망자들을 가장 소중했던 추억이 무한히 반복되는 천국으로 인도하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봤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선택한 사람, 특별한 기억을 선택한 사람, 사소한 기억을 선택한 사람, 그리고 그처럼 끝끝내 선택을 하지 못한 사람도.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망자들을 인도하면서 자신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었는지, 혹은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는지 누구보다 많이 숙고해봤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행복했던 기억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떄문에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 소중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선택을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 무언가를 얻어 행복했던 기억, 성공했던 경험과 같은 기억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기억을 버리고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만큼의 가치는 없었을거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이미 타인과 소중한 관계를 맺고 인연을 이어왔다. 바로 '림보역 직원들'이다. 모치즈키는 그들과 3년동안 같이 지내면서 가까워진 사람도 있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생겼다. 그는 자신이 타인과 소중한 관계를 맺고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지내왔지만 결국 교코의 기억을 보게 됨으로써 그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고 자신도 소중한 관계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로써 모치즈키는 그가 그토록 오랜시간 동안 선택을 못했던 이유인 '소중했던 것'이 없어서를 극복하고 누군가가 그를 '소중히 여겼던것'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게되어 림보역을 떠날 수 있었다. 모치즈키는 림보역에 와서도 소중한 추억 하나 없어 선택하지 못한 자신의 삶이 후회되고 소중했던 관계를 맺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부디 모치즈키가 천국에서는 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소중함을 매순간 느끼길 바란다.

4. 끝으로, 원더풀라이프.

"삶의 끝에서 한가지의 기억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선택하겠는가"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질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림보역에 있다면 어떤 기억을 선택할까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봤지만 결국엔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나도 와타나베처럼 사소하지만 행복한 기억을 고르고싶다. 그치만 막상 내가 림보역의 의자에 앉아 하나의 기억만 남기고 다른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실 나는 아직 모치즈키 처럼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선택할 만한 기억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건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억들을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다. 삶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분명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아 질 것이다. 그저 태어났으니 사는 것같은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게 아닌 진정으로 내가 즐겁고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태도로 말이다. 어쩌면 내가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일깨워준 도화선인 지금 이 순간을 고를 수도 있을것 같다. 끝으로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영화를 통해서던 이 글을 통해서던 혐오와 갈등이 난무한 요즘 세상에서 삶을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각자의 원더풀라이프를 살아가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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