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에세이>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명언 그 자체다.
내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
이 말을 지금부터 하려는 말에 쓰려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제목을 생각해 냈을 때 그의 묘비명이 연관어처럼 떠올랐다.
이러한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언제나 늘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만다.
첫째 녀석은 이미 내 키를 넘어섰고, 둘째 또한 나보다 더 키가 커버린 것이다. 성인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녀석들이라, 아직도 클 시간이 여전하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 뻔하다.
나는 나이 들지 않았다고, 늙지 않았다고.
아니, 몸과 마음의 노화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것을 보고 나서야,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보니 분명코 나는 이전보다 늙어 있었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내가 우물쭈물 보내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보기 위해선 눈높이를 살짝 올려야 하는 것이, 건강하게 훌쩍 자라 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은 물론 뿌듯함이라는 의미가 되지만, 한 편으론 야속하게 지나버린 세월과 시간에 그저 덩그러니 왜소하게 놓여있는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리라.
나는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경종.
무럭무럭 자라라.
나는 너희 키와, 성숙함의 발전을 보며 내면을 키우겠다.
초라해지는 건 겉모습이면 족하다.
속까지 초라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내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