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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운전은) 가까이 봐야 할까, 멀리 봐야 할까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by 스테르담

'근시안'과 '원시안'이란 말이 있다.

시력으로부터 유래한 말인데, '근시'는 가까운 곳은 잘 보이지만 먼 곳이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을 말하고, '원시'는 먼 곳은 비교적 잘 보이는데 가까운 곳이 흐리게 보이는 시력 이상 현상이다.


간혹,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멀리 보며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의 세심함을 놓치면 '가까이 있는 것, 디테일을 놓치지 말아라'라고 말한다.


어쩌란 말인가.

삶은 가까이 봐야 하는 것인가, 멀리 봐야 하는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의 답은, 늘 그 둘 다다.

둘 모두 중요하며, 결국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삶에 있어, '방향'이 중요하냐, '속도'가 중요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삶은 '방향'도 '속도'도 중요하다. 다만, '방향'을 추구해야 할 때 '속도'에 집중하고, '속도'를 내어야 할 때 '방향'을 운운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우리는 앞 차의 꽁무니를 봐야 하지만 그와 함께 저 앞의 도로 상황을 보기도 해야 한다.

당장 앞, 옆의 차만 조심해야 할 게 아니라 전체적인 교통상황도 봐야 한다. 한 번은, 운전을 하다 저 앞에 멈춰 있는 차를 보았다. 아마도 내 앞 차는 그걸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미 나는 앞의 상황을 보고 차선을 바꾸었으나 앞에 있던 차는 결국 서 있던 차를 받아 버렸고 그 뒤를 따르던 (내 자리에 있던) 차가 또다시 그 앞 차에 부딪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방어운전과 안전운전을 하려면 가까이 있는 것도 봐야 하고, 멀리 있는 것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곁에 있는 것들을 잘 살피고, 또 멀리 미래를 봐야 한다. 미래만 그리다 현재를 놓치는 우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저지른다. 눈앞의 것에 혈안이 되어,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가까이 봐야 할까.

멀리 봐야 할까.


답은 그 둘 다다.

더 나은 답이 있다면, 가까이 봐야 할 때와 멀리 봐야 할 때를 구분하여 보는 것이다.


눈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숨을 내 쉬며 주위를 돌아볼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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