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 Koo Kim
어린 시절 동네 버스 정류장 가판대의 주인아저씨는 페이지가 구겨지지 않게 읽기만 하면 가판대 앞에 꽂힌 잡지들을 읽는 걸 모른척해 주셨다. 어린 나는 가판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주 로 '주간 스포츠'나 '펀치 라인' 같은 스포츠 잡지들을 꺼내어 조심조심 읽었는데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집어 든 스포츠 잡지 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충격적인 사진을 봐버렸다. 1982년 라스 베가스에서 열렸던 김득구와 레이 멘시니의 WBA 라이트급 챔피언전의 사진들. 14라운드에 TKO로 무너진 김득구가 며칠 후 뇌출혈로 사망했던 경기이다. 사진 속의 김득구는 너무 많 이 맞아서 얼굴이 벌겋다 못해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무시무시하고 슬픈 이미지.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득구가 사망하고 얼마 안 돼 그의 어머니와 경기의 심판을 봤던 레퍼리가 차례로 자살한다.
복싱 역사상 가장 슬프고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
-미국에 Sun Kil Moon이라는 밴드가 있다. 2002년에 샌프 란시스코에서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인데 그룹 이름을 90년대 돌주먹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복서 문성길한테서 따왔다. 밴드 의 리더 Mark Kozelek는 광적인 복싱 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레이 멘시니의 홈타운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마을 출 신이다. Mark Kozelek가 김득구와 레이 멘시니의 경기를 TV 에서 생중계로 봤을 때, 그는 불과 열다섯 살이었다. 내가 김득 구의 퉁퉁 부은 보랏빛 얼굴을 평생 기억하듯, 목숨을 건 싸움 을 생방송으로 목격한 충격은 그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 았던 듯싶다. Mark Kozelek는 20년 후 Sun Kil Moon의 첫 앨범을 통해 김득구를 기리는 곡 Duk Koo Kim을 발표한다.
장장 14분이 넘는 긴 노래다. 그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젯밤 김득구와 레이 멘시니의 옛 경기를 다시 봤어.
한국에서 온 젊은이는 투혼을 불살랐지만 데미지는 결국 그를 무너트렸지.
사각의 링에 뻗어 버린 그는
왕관을 얻지 못 한 체 처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그의 수호천사는 끝내 그를 외면해 버렸네..."
#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