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하지 말았어야 할 꿈
그녀의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가난하고 서러운 결혼.
처가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시작된 삶은 그의 자존심을 매일 갉아먹었고, 그 분노는 어느새 말버릇이 되어
가족의 식탁 위에, 숨소리 사이에 자연스레 얹혀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사람이야. 너희 외할머니는 너희 엄마와 나를 떼어놓으려 했지.
그런데도 바보 같은 네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었어!”
그녀는 그 말들을 들으며 자랐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참 힘들었겠다고 생각했고, 위로 한 마디 없는 세상 속에서 가장이라는 무게를 버텨낸 젊은 남자였을 거라 애써 이해하려 했다. 아니,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라는 이름의 감정은 그녀가 성장하면서 점차 다른 얼굴을 띠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떠오르던 한 장면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단지 상상의 조각이거나, 꿈의 파편이라 여겼다.
어느 거리 한복판, 그녀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있었고, 여동생은 아버지의 손에 붙잡혀 서 있었다.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던 그 순간. 기억은 흐릿했고 감정만 또렷했다. 후에야 그녀는 그 장면이 실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간다던 아버지가 사흘째 연락이 닿지 않았고, 불안한 엄마는 회사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아버지가 회사 여직원과 함께 퇴근한 후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친정으로 몸을 피했다. 가족들은 둘의 이혼을 종용했고, 혼란스러운 기류 속에서 그녀는 그 거리의 장면 속에 있었다. 그날, 어른들은 말이 없었고 손은 차갑게 떨렸을 것 이다. 그녀는 그 모든 풍경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날의 온도만큼은 지금도 또렷했다. 그리고 언젠가, 성인이 된 그녀가 직접 들은 아버지의 말은 그 기억에 또 다른 균열을 만들었다.
“회사 못 나가고 대구 팔공산에 갔었지. 나는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어.
내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너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에게 나를 떠나라고 했지!”
그 말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고, 아버지의 말투, 표정, 태도에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얼어 붙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말은 마치,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선언처럼 들렸다.
“나는 상처받았으니까, 나는 가장이니까, 나는 참았으니까 이 정도쯤은 이해해도 되는 거잖아.”
그런 말처럼.
아버지의 당당함은 그녀에게 혼란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동시에 안겼다. 차라리 비겁하게 외면했더라면 못이기는척 이해라도 했을 텐데, 그는 자신을 설명하며, 자기 방어의 언어로 그녀를 다시 찔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족들의 무시 속에서 아버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강함은 때로 타인에게 무기가 되었다는걸. 또한 그녀는 느꼈다. 이해는 언젠가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아버지의 뻔뻔한 당당함은 그녀에게 단지 과거가 아니라 덜어내지 못하는 현재의 상처였다.